부울경을 빛낸 출향인 <16> 경희대 후마니타스암병원 지휘 정상설 원장
유방보존술 국내 첫 도입… 의료정보 환자와 공유에도 앞장

 

국립암센터와 원자력병원 등 암 진료에 특화된 병원이 있지만 대학병원 대부분이 암병원을 별도로 설치해 운영한 지 오래다. 각각은 같은 듯 다르다. 국가 암 등록 통계를 보면 2018년 기준 전체 암 환자 수는 24만3837명. 남자가 12만8757명, 여자는 11만5080명이다. 이들 각양의 암 환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병원과 의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규모, 인력과 장비 등 모든 면에서 앞선 병원이 있는 반면 나름의 특색을 가지고 다양한 시도를 하는 곳도 있다. 경희의료원 ‘후마니타스 암병원’은 이름만큼이나 여타 암병원과 뚜렷이 구분된다. 국내 첫 양한방 통합진료를 해온 경희의료원의 암병원 개설에 세간의 기대와 호기심이 컸다. 새롭고 다양한 시도로 지난 3년간 통합 암 치료의 새로운 길을 찾아온 이 병원의 초대 원장은 정상설 박사다.

그는 인간 중심의 전인적 치료를 지향한다. 국내 최초로 유방 보존술을 도입했고 에스트로겐 검사실을 개설했다. 유방암 환자의 생애 재활을 위한 모임 ‘가유회’를 처음으로 만들었다. 참 의료는 ‘환자의 주권’ 회복에 있다고 믿는 정 원장이다. 아버지가 부산대 의대 교수를 지냈고 두 형제도 정형외과와 성형외과 전문의인 의사 집안 특유의 정서도 한몫한 것으로 보인다. 상업화가 만연한 한국 의료계의 ‘이단아’로 보일 법하다. 정 원장의 이런 면모는 치료적 기능을 뛰어넘는 전인적 치료를 추구하는 이 암병원의 가치와 일치한다. 개인적 인연이 없는 후마니타스 암병원의 초대 원장이 된 연유로 볼 수 있다. 분당 차병원의 유방갑상선암센터 교수로 재직하던 중 자리를 옮겼다.

평생을 외과 의사로 한국유방암학회 초대 이사장과 대한임상종양학회와 대한외과 학회 이사장을 역임했다. 그는 의사와 의료기관이 독점하고 있는 의료정보를 개개인이 공유할 수 있도록 인공지능(AI) 기반 벤처기업 설립에도 동참했다. 정 원장을 지난달 12일 서울 회기동 경희의료원 입구에 있는 후마니타스 암병원 원장실에서 만났다. 정 원장에게 부울경의 통합 상생발전에 관한 조언을 부탁했다. “조직이 가지는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뚜렷한 개성과 창의적인 개인, ‘이단아’가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될 때 부울경이 공동발전의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이름도 독특하고 치료 가치도 다른 암병원이다.

▶‘후마니타스’는 인문학 중심의 대학을 추구하는 경희대학교의 브랜드다. 한때 국내 톱 3 병원 중 하나였던 경희의료원의 차별성은 양방과 한방, 즉 우리의 전통의학인 한의학과 서구에서 도입된 (서구)의학이 한곳에 함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의 80여 개 대학병원이 암 치료에 침(針)을 활용하고 있다. 의료보험 또한 적용된 지 20년이 더 된다. 암의 치료는 전인적일수록 효과가 높고 오래 지속된다. 후마니타스 암병원은 2018년 10월 의학, 한의학, 치의학의 통합 암 치료를 표방하고 출발했다. ‘암을 넘어선 삶’을 기치로 세웠다. 경희의료원 후마니타스 암병원의 미션과 경희대가 추구해 온 인간 중심의 학문 ‘후마니타스’는 일맥상통한다. 암으로 인해 무너진 개인의 ‘인간다움(Humanitas)’을 회복하는 데 집중·차별화하는 13개의 암센터와 진료과를 개설하고 있다.

-의사로 출발한 지 50여 년 만에 병원장 자리에 올랐다.

▶2018년 68세로 경희의료원 후마니타스 암병원장이 되었다. 가톨릭의대를 졸업하고 41년간 같은 대학과 병원에 근무했다. 주요 학회 이사장을 역임했고 의과대학과 병원의 다양한 보직을 두루 지냈으나 정년 퇴임 때가 되도록 병원장엔 오르지 못했다. 옳은 소리와 바른말을 하며 살다 보니 그랬던 것 같다. 돈벌이가 아닌 가치를 우선하는 설립정신을 가진 경희대에서 첫 병원장을 맡게 됐다.

-평범하지 않은 성장기를 보냈다.

▶부산 서대신동에서 초등학교에 다녔다. 어머니와 허창수 GS 그룹 회장의 모친이 진주여고 동창이고 같은 동네에 살아서 가끔 그 집에 놀러 가곤 했던 기억이 있다. 고교 2학년 때 학교 친구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죽었다. 가난한 친구의 죽음에 무심한 학교와 주변에 실망했다. 나는 그대로 있을 수 없어 항의도 하고 백방으로 뛰어 보았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 후유증은 깊고 오래 갔다. 방황했다. 공부는 뒷전이었다. 그 이후 사회적 이슈가 있으면 기꺼이 앞장서게 되었다. 가톨릭대학 의학과 2학년 때인 것 같다. 시위에 주저하지 않고 앞장섰다. 그 일로 종로경찰서의 수배를 받아 고향 부산으로 피신한 적이 있다. 돌아보니 정작 세상의 바른 질서를 만드는 것은 정직한 삶, 선한 마음과 따뜻한 사랑이고, 그 이상은 없다.

-유방암 전문 의사의 길을 택했다.

▶의사의 길에 들어설 때인 1975년 당시 외과에서 인기가 없던 유방 분야 질환을 맡았다. 유방암의 상태를 분석하는 기본 검사인 에스트로겐 호르몬 수용체 검사를 국내 최초(1984년)로 전문적으로 시행하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조금 지난 뒤에는 서울대병원 등에서도 이를 따라 하게 됐다. 병원(가톨릭의대 강남성모병원) 내에서 가장 많은 환자를 보았고 진료 수입도 많았다. 유방 보존술을 최초로 도입(1988년)했고 보건복지부 유방암 치료개발 주 연구자로 선정(1997년)됐다. 국내 최초로 유방질환 전문센터를 열고 유방암 환자의 재활 및 재가를 위한 ‘가유회’를 설립(1998년)했다. 유방암과 유방질환 전문 치료를 먼저 시작한 결과다. 유방암 환자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여성 암 환자의 20.5%인 2만3600명으로 여성 암 중 1위다.

-대를 이어 외과 의사가 됐다.

▶아버지(정우영·1925~2003년)는 경성의학전문학교(서울의대 전신) 졸업(1950년) 후 부산대 의대 교수로 재직(1959~1965년)했다. 장기려(1911~1995년, 전 부산대 의대 교수) 박사의 제자로 간 연구회를 만들고 국내 최초의 간엽 절제를 시행(1959년)한 외과 의사다. 우리나라가 세계적 간이식 강국이 되는 데 단초가 됐다. 당시 우리 집에는 실험에 사용된 개가 여러 마리 있었다. 어머니의 결혼 금반지를 팔아 그 개를 사고 논문을 썼다고 들었다. 아버지가 밤낮으로 연구에 몰두해 있는 동안 둘째 동생이 폐렴으로 죽었다. 대학을 떠나 ‘정우영외과의원’(부산진구 부전동)을 개원하게 된 계기였던 것 같다. 그곳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환자를 진료하셨다. 지금은 막내 동생이 부산에서 성형외과를 개원하고 있다. 아버지는 나에게 “의사는 따분하니 큰 배의 선장이 되어 대해를 항해하라”고 하셨다.

-부산 근대 의료 지도자 정일천 박사가 집안 어른이다.

▶원래 우리 집안은 진영(마산)에서 대대로 농사를 지었다. 정 박사는 할아버지의 4촌 형제로 집안에서 처음으로 의사가 된 어른이다. 아버지를 의사로 이끄신 분이다. 부산 근대 의료의 첫 장을 연 인물이기도 하다. 정일천(1906~1993년) 박사는 1928년 경성의학전문학교 4학년 때 부산부립병원에서 임상실습을 하기도 했다. 1955년 부산대 의과대학 초대 학장 및 첫 부산대학교 부속병원장을 지냈다. 1962년 가톨릭의대 해부학 주임교수가 됐다. 1969년 나는 그 할아버지가 몸담았던 가톨릭의대에 입학, 1986년 외과학 교실 조교수가 되었다. 정일천 박사는 부산과 대한민국 의료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분이자 우리 가족을 의사의 길로 이끄신 어른이다.

-잊지 못할 환자가 있을 것 같다.

▶두 명의 환자가 있다. 한 사람은 내가 전공의(레지던트) 2년 차 때였다. 환자를 위한답시고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위험한 경우임에도 적극적인 수술에 임했다. 수술이 잘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곧 사망했다. 충격적이었다. 악몽에서 깨어날 무렵 위암 수술이 잘 끝난 어느 환자의 완치를 격려하고 축하해 준 뒤 해외 연수를 떠났다. 다녀오니 그는 암이 재발해 호스피스(사망 전 입원) 병동에 있었다. 그 환자는 오히려 나를 볼 때마다 빙그레 웃어주었다. 한 번은 그 이유를 물었다. 그의 답은 뜻밖이었다. “종일 환자를 진료하는 선생님께 내가 웃어주면 피로가 씻어질 것 같아서”라고 했다. 모나고 성급한 나의 성정이 오히려 환자들로부터 배우고 다듬어져 이만큼이라도 왔다.

-의료정보를 환자에게 돌려주는 사업을 하고 있다.

▶대학병원 의사로 일하면서 항상 마음속 의문이 있었다. 왜 병원은 다른 분야와 달리 고객인 환자가 갑이 아니고 을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를 두고 10년 전 하버드대학 크리스텐슨 교수는 의료정보가 병원에 보관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주장했다. 환자 개개인에게 자신의 의료정보를 돌려주는 방안을 강구하다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건강관리 앱을 통해 개인건강관리 데이터를 축적하는 회사(지아이비타·GIVITA)의 설립(2018년 11월)에 참여했다. 일종의 의료정보 개인주권 확보를 돕는 것이다. AI 기반 건강정보(Health Data)로 발전시키고 있다.


◇ 정상설 원장은

▷경남 진영 출생(1950) ▷부산 부민초등학교, 경남중학교, 부산고등학교 졸업, 가톨릭의대 졸업(1975), 동대학 의학박사(1986), 미국 루이빌 의대 연수(1986~1988) ▷경력 : 가톨릭대 의대 외과학교실 조교수(1986~1991), 수련교육부장(1996~2001), 강남성모병원 외과과장(2001~2005), 외과학교실 주임교수(2008~2016), 분당차병원 유방갑상선암센터 교수, 경희대 후마니타스암병원장(2018~현재) ▷학술활동 : 한국유방암학회 초대 이사장(2003~2005), 대한임상종양학회 이사장(2005~2009), 세계유방암학술대회(GBCC) 대회장(2011), 대한외과학회 이사장(2012~2014), 국제의료기술평가 학술대회(HATI) 사무총장(2013) ▷주요 업적 : 국내 최초 유방보존술 도입(1980년대 후반), 국내 최초 유방암 에스트로겐 호르몬 수용체 검사실 개설(1984), 국내 최초 유방센터 개소(1998), 국내 최초 유방암 환우 모임 ‘가유회’ 설립(1998) ▷저서 : ABC of Breast Diseases(고려의학, 1998), 유방학(일조각, 2005), 외과수술아틀라스(바이오메디북,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