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을 빛낸 출향인 <9> 승효상 ㈜이로재 대표·건축가
“건축은 공유재다” 터전 보존해 주민 보듬는 도시재생의 꿈
부산 사하구 감천문화마을은 가파른 땅에 단층집이 다닥다닥 들어서 있다. 이제는 명소가 된 감천마을에 터를 잡은 사람은 몰려드는 방문객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이곳 주민은 삶의 터전이 외부인의 ‘볼거리’로만 변하는 데 대해 아쉬움을 토로한다. 마을 주민의 삶과는 무관한 외벽 치장으로 관광객만 들끓는 ‘전시마을’이 될 것에 대한 우려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부산 출신 건축가 3명과 외국인 건축가 1명이 2014년 구청에서 매입한 빈집 4채를 개수했다. 동네 청년의 에너지가 이곳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사는 사람’과 ‘구경 오는 사람’의 공존을 시도한 작업이다.
서울역에서 남대문과 남산으로 가는 길은 고가도로, 지하도, 기찻길로 분절돼 택시를 타고도 제법 시간이 걸렸다. 이제는 걸어서 10분 거리로 연결됐다. 도심 어디든 걸어서 닿을 수 있고, 지문(地紋)과 지형(地形)을 되살린 서울로 가는 시작이다. 대지는 도시를 품고, 도시의 구조물은 사람을 안는다. 자연과 도시, 사람은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결합될 때 빛난다.
부산과 서울에서 각각 건축고문과 총괄건축가를 지낸 승효상 ㈜이로재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가 주도한 일은 도시에 새 활력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승 대표는 “건축은 공유재다. 사유재가 아니다. 부동산이라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공동체 붕괴 위기를 건축을 통해 극복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새로운 결합을 통해 도시가 정체성을 회복하고 경건성을 품게 하는 일이 주된 관심사다. 부울경 광역도시에 대해서도 규모만 키우는 메가시티가 아닌 성찰의 도시, 네트워킹의 메타시티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2월 25일 오후 서울의 대학로 뒷골목 언덕배기에 자리한 ㈜이로재에서 그를 만났다. 이후 SNS로 대화를 추가했다. 승 대표는 오랜 친구인 문재인 대통령(그는 ‘문통’이라고 불렀다)이 퇴임 후 살 양산 사저를 설계하고 있었다. 그는 김해에 있는 노무현 묘역의 설계자이다. 그는 신학 대신 택한 건축을 성직이라고 여긴다.
-청와대와 국회의사당의 건축이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청와대는 사람이 5년간 살면 정상일 수 없을 정도다. 다행히 문 대통령은 본관 대신 비서동에서 집무하고 본관은 공식 행사 때 주로 이용한다. 내가 그렇게 조언했다. 본관의 건축이 가진 부정적 요소에 물들지 않았을 것이다. 특히 대통령 관저가 문제다. 사람이 살 만한 곳이 아니다. 환기도 안 되고 창문도 없다. 정을 붙일 만한 곳이 하나도 없다. 문 대통령 본인도 그렇게 권위적인 시설과 건축을 싫어한다.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옮기는 데 대해 경호실과 이야기한 적 있다. 대통령의 안전을 위해 주변을 정리하는 것이 매우 큰 일이라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예 청와대의 비서동 전체를 새로 지을 것을 제안했는데,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문 대통령(성품)은 자기 자신을 위해 무엇을 하는 것을 굉장히 싫어한다.
국회의사당은 민의의 전당이다. 그러나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자기 영토를 확보하고 민의를 차단하는 건물이다. 진정성이 없다. 독일 국회의사당의 경우 폭격에 무너진 것을 수리해서 사용한다. 유리로 만든 돔 아래 본회의장을 누구나 내려다볼 수 있다. 제국주의 시대 건축물을 통일독일 이후 시대에 맞게 바꾼 것이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불행하게도 대회의장이 있어야 할 곳에 아무 시설이 없다. 가장 중요한 곳을 홀과 현관이 차지하고 있다. 엉망진창의 건물이다. 당연히 옮겨야 한다.
-국가나 도시 단위 건축 관련 정책과 자문에 많이 관여했다.
▶2014년 초대 서울시 총괄 건축가가 되었다. 종래의 재개발에서 재생으로, 공급자 주도가 아니라 주민 참여형으로 완성보다 과정을 중요하게 고려했다. 공공건축 발주에서 턴키제도를 없애 젊은 건축가의 참여 가능성을 높였다. 특별히 ‘서울로 7017’이 서울시 개발 전환의 상징이다. 찻길이 노후화되어 허물려고 한 것을 허물지 않고 네트워킹을 만들었다. 오랫동안 불과 200m 거리의 남산을 차를 타고 가야 했다. 이제는 가까운 곳은 걸어서 갈 수 있다. 만리동 주민이 성벽 안으로 들어오고 스스로 재생해 간다. 아침에 걸어서 출근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건축정책위원장은 국가의 건축 시스템을 바꾸는 역할이다. 필요한 법 개정을 거의 끝냈다. 정부 건축의 경우 조달청의 가격 입찰로 발주한다. 동사무소와 파출소와 같은 작은 시설이 더 중요하다. 규모가 작다고 조달청이 발주하면서 설계비를 싸게 써내는 곳에 일을 맡긴다. 좋은 시설이 원천적으로 될 수 없다. 그래서 이 같은 발주방식을 거의 다 바꿨다. 큰 시설도 이전에는 이상하게 현상 공모해서 결과를 많이 왜곡시켰다. 이를 시스템으로 바꾸었다. 정부 부처에서 발주하는 시설이 부처별로 굉장히 많은데 일관되지 못했다. 강제적으로 협의하도록 만들었다. 공공건축에 관한 법과 우리나라 건축법을 바꾸어야 하는 부분도 있다. 다른 나라는 자격증인 면허증을 주면 자기가 알아서 짓는다. 허가받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이 과정에서 심의해야 한다. 올해 시행령이 시행되면 이 또한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용산 미군 부대 철수 부지에 치유공원을 만든다고 했다.
▶미군이 떠난 자리 용산기지를 온전히 되살려 서울시민의 가슴에 안겨주는 것은 여전히 미래의 계획이다. 잔해를 철거하고 오염된 땅을 치료하는 계획조차 아직은 세울 수 없다. 올해 말쯤 되면 미군과 미군 시설의 완전한 철거로 비로소 현장 실태조사와 실측을 할 수 있다. 대통령의 제안으로 미군 장교동 일부만 주민 개방시설로 만들었다. 주택을 모아 자료관 역사관을 개설한 것이다. 미군이 다 철수하지 않고 아직도 캠프가 남아 있다. 지하시설을 조사하지 못해 설계가 완성될 수 없고 토양오염의 실태 또한 파악되지 않았다. 미군이 올해 다 나가면 설계를 수정 보완하고 2030년에 일부 쓸 수 있으나 토양오염 정도에 따라 더 길어질 수 있다. 언제 완성될지 알 수 없으나 국민의 의견을 모으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과정이 중요하다.
-우리나라 건축이 바뀌어야 할 점은
▶건축은 철저한 공유재다. 이를 사유재로 인식하는 것이 문제다. 집을 축재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폭력이고 테러다. 박정희 시대 이전에는 일제강점기에도 우리나라 건축에 대한 윤리적인 인식이 존재했다. 그러나 미국식이 근대식이 되고 난 뒤부터 아예 사라졌다. 일부 건축업자에게 (건설토건사업을) 몰아주고 그들의 특혜를 돈으로 결탁했다. 부동산 투기가 사회 전체적으로 만연하게 됐다. 선 분양제도처럼 좋지 않은 제도와 가장 쉽게 돈 버는 부동산, 정치적 유혹 및 비리와 쉽게 연결되었다.
-건축가로서 여정과 마지막 정착지는
▶코로나 직전 ‘묵상’(2019, 돌베개)의 출간을 기념해 부산과 경남지역을 중심으로 ‘영성의 지도’라는 답사 여행을 했다. 일종의 성지 건축물 순례였던 책에 맞추어 나의 건축을 중심으로 되짚었다. 밀양의 명례성지, 봉하 고 노무현 대통령 묘역과 기념관, 부산의 구덕교회(승 대표가 부산에 있을 때 다녔다), 경산 하양의 무학로교회 등이다. 중간쯤의 길에 통도사도 있고 이웃 경북지역 ‘군위의 사유원’으로 이어지는 1박2일 코스였다. 경남 고성의 유스호스텔과 제정구 선생 기념 커뮤니티센터 등 최근까지 고향 부산과 인근 경남·북 등 곳곳에 크고 작은 나의 작품이 있다. 나의 최종 정착지는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를 개조한 노원구 ‘백사마을’이다. 여러 건축가가 참여해 설계는 다 끝났다. 심의도 통과되어 시공을 앞두고 있다. 투자 수익이 안 나온다고 하지만 공공에서 하는 일은 손실이 불가피할 때도 있다. 사업의 핵심은 터 무늬도 살리고 원주민도 정착하게 만들고 과도한 개발의 풍경을 다시 전환하는 것이다. 우리 나라 풍경을 망가뜨리는 것이 대규모 아파트 단지다. 아파트만이 새로운 주택이라 생각하는 데 대한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될 것이다.
-부울경이 동남권 광역도시, 메가시티로 간다.
▶본래적 의미의 메가시티는 반대한다. 규모를 키워 다른 도시나 지역과 경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부산과 울산과 경남이 각각의 특성을 살려 서로 필요로 하는 것을 네트워킹하는 것은 옳다. 그런 의미라면 메가시티가 아닌 메타시티라는 표현이 맞다. 메가시티가 아니라 메타시티로 가야 한다. 성찰적 도시로 질적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큰 단위가 아닌 작은 단위에서 네트워킹을 맺는 것이 중요하다. 작은 단위에서 작은 필요부터 아이덴티티를 중심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 승효상 건축가는
▷1952년 부산 출생 ▷부산대신초등학교, 서중, 경남고 졸업 ▷1975년 서울대 건축학과 졸업 ▷1980년 비엔나공과대학 수학 ▷경력: 1981~1982년 MMP(Marchart Moebius und Partner-비엔나) 디자이너, 1986~1989년 공간 대표, 2008년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2011년 광주비엔날레 총감독, 2014년 서울시 초대 총괄건축가, 2017년 비엔나공과대학 건축학부 객원교수, 2018년 국가건축정책위원장 ▷현직: ㈜이로재종합건축사 사무소 대표(1989~), 동아대학교 석좌교수
▷저서: ‘빈자의 미학’(1996·미건사), ‘건축, 사유의 기호’(2004·돌베개), 지문(2009·열화당),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2016 돌베개)
▷수상: 1993 한국건축문화대상, 2007 대한민국예술문화상, 2002 올해의 작가(국립현대미술관, 건축가 최초), 2019 오스트리아 ‘학술예술 1급 십자훈장’(아시아인 최초), 2020 은관문화훈장, 2002 Honorary Fellowship(미국 건축가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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