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을 빛낸 출향인 <49> 김재구 차기 한국경영학회장
韓 첫 직업 연구가 “기업 원하는 인재 길러야 지역도 산다”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은 고 김대중(DJ) 전 대통령 이후 중차대한 국가적 과제였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세종시로 행정수도 이전을 공약했다. 이후 대통령 직속의 균형발전위원회가 정권마다 등장했다. 대통령에 따라 대하는 태도는 달랐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부터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를 설치한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처음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을 정권의 성공 여부를 가늠하는 국정과제로 중요도를 높였다. 그만큼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불균형이 심각한 상황으로 인식한다. 윤석열 정부의 불균형 해법은 기업을 지역혁신의 중심에 두고 있다. 정부의 친기업 노선은 일찍이 예견됐다. 대기업들의 국내외 투자 계획이 전례 없는 규모로 이어지고 있다. 그만큼 기업의 역할에 거는 기대가 안팎으로 커졌다. 지역별 기업이 해당 지역의 혁신을 주도하고 대학은 이를 위한 인력 양성을 맡는다. 기업은 지역사회의 가치를 공유하는 경영 혁신에 나선다. 기업이 앞장서고 지역사회와 대학이 연계하는 혁신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중심 과제다.

김재구(58)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난해 9월 2023년도 한국경영학회장에 선출됐다. 뜻 맞는 교수들과 지난해 11월부터 기업 중심 지역생태계 조성을 통해 지역 불균형을 해소하고 경영학의 새로운 역할을 정립할 방안을 강구해왔다. 김 교수는 경남 밀양 출신으로 부산에서 초중고를 졸업했다.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해 박사까지 마쳤다. 박사 때는 새롭게 등장한 컴퓨터 하드웨어 업계의 전략 변화가 기업의 사멸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조직과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경영학을 택한 그는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증대시키는 일에 일관된 노력을 기울였다. IMF 경제위기 때 김 교수는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위원으로 일했다. 1999년 한 해 동안 무려 18개의 과제를 수행했다. 대부분의 연구 주제는 급작스럽게 닥쳐온 경제 위기로 인해 해체가 가속화된 일자리를 어떻게 재창출할지다. 2000년부터 2년간 실리콘 밸리 중심 대학 스탠퍼드에서 연수했다. 세계적 혁신 기업을 만나고 조직 이론의 대가들로부터 배웠다. “죽어가는 경영학을 되살려 경영학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겠다”며 지난해 전국을 돌며 1만여 명의 학회 교수를 만났다. 그가 만난 지방대학 교수들은 입을 맞춘 듯 지방 경제와 대학의 몰락에 대한 절망적인 이야기를 쏟아냈다. 중앙정부 주도 지역균형발전정책의 한계를 절감했다. 김 교수를 지난 19일 국제신문 서울본부에서 인터뷰했다.

-결국은 양질의 지역 일자리 창출이 답이다.

▶문재인 정부는 정부 주도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일자리위원회를 만들어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았다. 청와대에 일자리 수석까지 두었다. 그러나 별다른 성과는 내지 못했다. 오히려 국가 경제질서를 경직시키는 공무원 수만 대폭 늘렸다. 기업의 투자는 위축됐다. 지역 불균형은 심해졌다. 수도권의 과열은 극에 달했다. 고급 인력은 판교 벨트 이하로는 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한 사실이다. 기업 주도의 전향적인 지역 생태계 혁신으로 죽어가는 지방대학을 살리고 지역 청년이 떠나지 않도록 양질의 지역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새로 출발한 윤석열 정부와 2023년 차기 한국경영학회장인 나의 공통된 목표다.

-한국경영학회 차기 회장에 선출됐다.

▶한국경영학회는 경영학 분야 교수들의 학술단체로는 최초로 생겼다. 내가 68대 회장이다. 1956년 서울대와 연세대 교수들이 설립을 주도했다. 2010년까지는 특정 대학 교수가 돌아가며 회장을 맡았다. 지금은 치열한 경선을 거쳐 전국 회원이 직접 선거로 뽑는다. 거의 한 해 동안 전국을 돌며 대부분의 회원을 만났다. 경영학의 위기와 지방의 위기를 동시에 목도했다. 경영학은 실천 학문이다. 기업의 문제를 해결하고 기업이 요구하는 인력을 길러내야 한다. 기업경영의 요구에 창의적인 대안을 낼 수 있어야 한다. 1997년 외환위기와 인터넷 혁명 시기를 맞아 기업의 절실한 요구를 경험하고도 우리 대학은 변하지 않았다. 현장이 요구하는 답을 내는 것이 아니라 유명 학술지에 발표 논문 수를 헤아리는 경영학으로 변질됐다. 안타깝게도 기업 경영에 쓸모가 없는 것이 적지 않다.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 같은 경우는 자사 인증자격으로 직원을 채용하기에 이르렀다. 적지 않은 기업이 필요한 인력을 스스로 양성하고 나섰다. 학문적으로도 의미가 있고 살아 있는 지식을 가르치고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길러 기업에 줘야 한다. 스스로 혁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

-2023년 부산 벡스코에서 산·학·관이 함께 하는 대규모 융합 학술행사를 개최한다.

▶좀 외람되지만 현재의 경영학은 죽은 학문이 되고 있다. 경영대학이 지난 10년 동안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핵심은 기업의 미래 혁신 인력을 양성하는 능력을 제고하는 것이다. 결국 지역 혁신 생태계를 만들어 나가는 길은 수요자인 기업을 중심으로 놓고 기업이 주도하게 하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다. 산학 협력과 정책 연구, 연구 개발 자금의 혁신적 운용을 위한 산학연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 새로운 경영학과 기업주도 지역혁신생태계를 선보일 융합학술대회가 2023년 부산 벡스코에서 3일간 개최된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고위 관계자와 혁신주도 기업 대표와 경영학자 등 3000여 명이 참가할 예정이다.

-한국노동연구원에서 IMF 경제위기 대응을 위한 다양한 연구과제를 수행했다.

▶박사 학위 후 예상과 달리 응모한 대학 교수 모집에 실패했다. 스승은 노동연구원에서 사람을 뽑으니 가라고 했다. 처음에 안 간다고 했다. 연구하고 학생들 가르치려고 공부한 사람으로서 좀 안 맞는 것 같았다. 막연하게 국책연구소에 대한 편견도 있었다. 한 학기가 지나고 두 번째 같은 권유가 있었다. 1997년 1월에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시작했다. 커다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었다. 가자마자 외환위기가 터졌다. 정말 뭐라도 해야 한다는 결의가 충만했다. 원장의 호출에 걸어가지 않고 뛰어갔다. 외환위기 터진 다음 첫 주부터 그랬다. 다급한 마음에 한가하게 걸어갈 수 없었다. 한 주일 지나자 연구원의 전 박사들이 모두 뛰기 시작했다. ‘노사정위원회’가 만들어졌다. 많은 일이 있었다. 원장, 부원장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에 기반한 각종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네 마음대로 다해봐라”는 격려도 뜨거웠다. 한국 최초의 직업 연구를 했다. 연공에 의한 노동시장이 아닌 직무에 입각한 노동시장으로의 전환에 필요한 다양한 과제를 수행했다. 직무(job) 기반 노동시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행에 옮겼다. 지금 생각해 봐도 혁명적인 일이다. 삼성 LG 현대 대우 그룹 내 3대 주력 기업 대표와 인력 담당 상무이사를 대상으로 향후 필요한 업종과 인력을 조사·연구했다. 외국인투자기업협회도 참여했다. ‘21세기의 화이트칼라 유망 직종 50선’이라는 단행본도 출간했다. 한국 최초의 직업 연구였다. 국가를 보고 국회를 보고, 예산을 놓고 관련 기업과의 관계를 일목요연하게 이해하고 네트워킹할 수 있었다.

-부울경이 글로벌 메가시티로 도약하기 위한 방책이 있을 것 같다.

▶광역자치단체 간 유기적 협력이 가장 중요하다. 그다음의 문제는 정교한 전략 문제다. 지역혁신생태계는 기업, 지식(기술) 그리고 사회혁신생태계로 구성된다. 기업생태계는 ‘창업-성장-수확/정리-재창업’이라는 순환관계를 가진다. 따라서 부울경의 기업생태계를 지역적으로 또한 산업적으로 포트폴리오 개념을 갖고 조성할 수 있도록 기업 및 기업가 관점에서 정책을 재정비해야 한다. 지역에서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려면 먼저 해당 산업과 관련된 지식(기술)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지역 대학의 역할이 강조된다. 사회혁신생태계는 해당 지역이 살 만한, 그리고 매력적인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지역 고유의 문화가 내재화되어야 한다. 부울경은 인구 800만 명으로 전국 인구의 15%, 경제 규모 역시 국가 전체 GDP의 15% 규모다. 따라서 국가적 시각과 관점으로 부울경 메가시티를 실현하는 접근법이 필요하다. 싱가포르를 뛰어넘는 글로벌 미래 혁신 도시 추구라는 관점에서 기업과 산업 그리고 일자리 정책을 전개해야 한다. 유럽에서 가장 큰 항구도시인 네덜란드의 로테르담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울산과학원(UNIST) 등을 활용해 글로벌 스타트업 허브를 만들 수 있다. 지역 제조업과 중공업을 연결하고 수소를 신산업으로 개발할 수 있다.


◇ 김재구 교수는

▷1964년 경남 밀양 출생 ▷학력 : 부산 동래초·내성중·동인고·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서울대 경영학 석사 및 박사 ▷경력 : 경제정의실천시민운동연합 회원(중소기업위원장, 노동위원장 등 역임),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미국 스탠퍼드대 초빙연구위원,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 대통령직속 정부혁신지방분권위원회 행정개혁전문위원회 전문위원, 기획예산처 기금운영평가단 위원, 자동차산업연구회 창립 회장, 고용노동부 정책자문위원, 한국생산성학회장, 공공기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 사회적기업 국제포럼(SEWF) 이사, 공익법인 함께 일하는 재단 비상임 이사, 한국인사조직학회장, 한국경영학회 차기 회장 선출 ▷기타 : 재경 동인고 총동창회장, 재경 동인고 쇠미장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