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을 빛낸 출향인 <52> 배기동 세계시민포럼 상임대표
亞 첫 주먹도끼 발굴 고고학자 … 축제로 유적 보존 이끌다
역사정체성의 확립, 올바른 역사 기록과 연구에 문화재 발굴은 매우 중요하고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문화적 부로서 국격을 높이는 계기가 된다. 정신적으로 떠받칠 힘이 되고 지속 가능한 경제의 핵심 자산으로 작용한다. 개발 파고 속에 파묻히고 훼손되는 경우도 있다. 고고학적 가치를 지닌 유적이 온전히 발굴되고 해당 지역 주민의 사랑을 받으며 현장에서 보관·공개·연구되는 것은 매우 성공적인 사례다. 전곡리 선사유적지 구석기 발굴 사업이 대표적이다. 1979년 한탄강변에서 아시아 최초로 아슐리안형 주먹도끼가 발굴됐다. 1994년 시작된 전곡구석기유적축제는 매년 수십만 명의 참가자가 함께하는 세계 최고의 전통을 가진 선사문화축제로 자리 잡았다. 축제를 통해 이어진 열기로 2011년 4월 25일 전곡선사박물관이 개관했다. 배기동(70) ㈔세계시민포럼 상임대표 겸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지난달 25일부터 30일까지 그리스 크레타대학에서 개최된 아슐리안학회에서 ‘동아시아 초기 구석기 시대의 주먹도끼와 문화적 다양성’을 온라인으로 발표했다. 지난 30여 년 동안 프랑스 또따벨 세계아슐리안학회를 비롯해 수많은 국제학술대회에서 전곡리 유적 발굴 성과를 나눴다. 전곡 구석기 유적 발굴 당시 현장 감독이었던 그는 축제로 지역주민의 유적지 지정에 관한 부정적 인식을 바꿨다. 전곡선사박물관의 개관 첫 관장으로 부임했다.
1909년 11월 순종은 창경궁에 제실(帝室) 박물관을 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박물관이다. 1948년 12월 국립박물관으로 해방 후 재정비돼 2005년 현재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자리 잡았다. 1990년대는 1000개의 박물관 건립이 목표였다. 지금은 1300여 개의 각종 공사립 박물관이 국내 곳곳에 있다. 전곡선사박물관도 그중 하나. 2004년 서울에서 세계박물관협회(ICOM)의 총회와 학술회의가 있었다. 배 교수는 그때 한양대 박물관장으로 서울대회 사무총장을 맡았다. 국립박물관장, 국립한국전통문화대학 총장, 국립박물관 문화재단 이사장을 역임했다. 지난 11일 서울 서초구 포럼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서울대 박물관 학예사 시절 전곡리 유적발굴 현장 책임자로 일했다.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학부 졸업 후 대학원과정 중에 삼성문화재단의 호암미술관 첫 학예사가 됐다. 개관 준비 기간 근무를 마치고 서울대 박물관 학예사로 모교에 복귀했다. 당시 전곡리 유적 발굴 단장은 스승 김원용(1922~1993) 교수다. 김 교수가 내게 현장 책임을 맡겼다. 동아시아에서 그동안 없다고 보았던 아슐리안형의 주먹도끼가 전곡리 유적에서 최초로 발견했다. “동아시아에는 찍개문화만 존재했고 주먹도끼문화는 없었다”는 미국 하버드대학 모비우스 교수의 세계구석기 학설을 무너뜨린 발굴이다. 1979년 발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수습된 주먹도끼를 보고 발굴 현장으로 온다고 해서 야단법석을 떨었다. 박 대통령 대신 김계원 비서실장이 발굴 현장에 왔다. 그후 KBS는 상주하면서 발굴 현장을 찍었고 영화관의 대한뉴스에서 소개되기도 했다. 발굴은 1979년도 3월 21일부터 4월 10일까지 집중됐다.
-문화축제를 만들어 지역주민의 유적지 지정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었다.
▶내가 실질적으로 발굴 현장을 총괄했다. 자연스럽게 지역주민과 어울렸다. 발굴작업을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몇 년 뒤 귀국하니 우리 사회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사람의 생각도 바뀌었다. 유적 발굴 후 개발을 제한해 묶어 놓았다. 농사를 지을 때도 좀 불편하고 집을 지으려 해도 나라에서 잔소리하니까 사람이 자꾸 유적 지정에 대해 비판적 입장이 됐다. 가만두면 안 되겠다 싶었다. 1992년부터 내가 나서 유적보존운동을 전개했다. 전곡선사문화축제가 1993년 4월에 처음으로 열렸다. 선사 유적이라는 것은 사람이 가시적으로 보기 어렵다. 계속 보존의 의미와 가치 그리고 이유를 매번 새롭게 이해시켜야 했다. 미술 프로그램도 하고 선사시대 상상화 그리기도 했다. 그렇게 선사시대에 대해 새로 인식하게 애썼다. 축제는 수십만 명이 참가하는 행사로 자리 잡았다. 그때만 해도 그런 축제가 없었다. 해마다 5월 5일 어린이날이면 수많은 아이가 몰려왔다. 세계적인 인류학자 이브 꼬빵에 의해 프랑스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전곡선사박물관은 이제 세계적인 구석기 유적 박물관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전곡선사박물관은 매우 특별한 경우다. 당시만 해도 유적 발굴 후 국가가 박물관을 세우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지방자치단체가 솔선해서 예산을 투입해 세계적인 수준으로 유적박물관을 짓는 것은 대단히 특별한 경우이다. 휴전선이 가까워 주민이 많지도 않은 지역에 큰 예산으로 박물관을 건립한다는 것은 어려운 결정임에도 그동안 선사문화축제 등을 통해 주민과 당국자가 유적의 중요성을 이해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박물관 건축은 당시로는 어려운 과정인 국제공모를 통해서 프랑스 XTU의 공동설립자인 프랑스 부부 건축가 아눅 르정드르, 니콜라스 데마지에르의 ‘선사유적지로 통하는 문’이 설계 공모(2006)에 당선됐다. 박물관은 2011년 준공됐다. 용을 형상화한 스테인리스 외장으로 되어 있다. 2012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우수상에 선정됐다. 이들 부부는 2015년 10월 밀라노 유니버설 전시회에서 건축 부문 1위 상을 받았다. 전곡선사박물관은 특별한 개념의 건축으로 네안데르탈박물관이나 최근에 개관한 스페인 아타푸에르카 박물관과 함께 세계 최고의 유적박물관 사례로 손꼽힌다. 프랑스에서도 건축가들이 전세 비행기로 와서 견학하기도 했다. 모나코의 국왕 알베르 공이 여수해양박람회에 참가한 뒤 아슐리안 석기를 보기 위해 방문했다.
– 동아프리카 아슐리안 석기 유적을 국내 최초로 발굴했다.
▶전곡리유적 발굴뿐만 아니라 지난 40여 년간 수많은 국내외 다양한 유적을 발굴했다. 전곡리 구석기 유적(1979~2005), 암사동 신석기 유적(2010~현재), 연천 삼곶리 대장간마을 유적(2008~2011), 화성 당성(2000 ~2010), 충주 양평리 적석총(1980~1983), 단양 전 온달장군 묘인 태장이묘 유적(2000~2005), 하남 미사리 유적(1991~1994), 부천 고강동 청동기 마을 유적 (1995~2002), 파주 금파리 구석기 유적(1989~1991), 파주 주월리·가월리 유적(1994~1995), 연천 장남교 구석기 유적(2008~2010) 등 주요 국내 유적을 발굴했다. 한반도로 인류의 확산 과정을 추적하는 대장정으로 탄자니아 이시밀라 구석기 유적(2002)에서 시작해 이란 카스피해 연안 구석기 유적 발굴 조사(2005~2010), 네팔 당계곡 고고학 조사(2015~2016), 말레이지아 구석기 유적 조사(2014~2016), 남태평양 팔라우 및 얍 고고학 조사(1994), 인도네시아 구석기 유적 조사(1986) 같은 해외 유적도 조사했다. 국내 최초로 동아프리카의 대표적인 아슐리안 석기 유적인 이시밀라 유적을 발굴하기도 했다.
-사단법인 세계시민포럼 상임대표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빈번한 왕래와 이동으로 다양한 문화 갈등이 발생한다. 인간이라는 게 모습은 좀 다를 수 있어도 본성은 다 같다. 모습과 삶의 모양이 다르다고 자꾸 티격태격 싸운다. 괜스레 무시하기도 하고. 이런 갈등을 원천적으로 줄여야 하지 않겠나. 교육이 필요하다. 국내 다문화 가정 역시 이런 관점에서 도움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정부와 관련 기관이 노력하고 있지만 이주자 입장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다. 세계시민포럼은 2016년 설립된 비영리 기관이다. 우리와 함께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의 근본 변화를 만들어내는 세계시민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문화적으로, 그리고 인식 그 자체를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라고 생각하게끔 하는 것이다. 재능 있는 아이에게 장학금도 줄 계획이다. 한미약품이 주력 후원 기업이다.
-부울경이 한국의 글로벌 중심도시로 나아가려 한다.
▶문화가 절실하다. 문화에 대한 관심이 구두선이 아니라 대중에 뿌리내리는 일이 돼야 한다. 기존 문화에 대한 가치 재인식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도시 자체가 가지는 매력을 잘 만드는 것 역시 중요하다.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는 교통의 동쪽 종점으로서 일본 열도와 태평양과 연결되는 거대 국제도시로서의 미래 비전을 가지고 고유한 문화도시를 지향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울경 핵심 산업을 지원하기 위해 각각에 맞는 문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나라 동남 해안을 연결하는 큰 문화권이므로 각기 다른 개성을 제대로 살린다면 문화의 축, 나아가 비즈니스의 축이 될 수 있다.
◇ 배기동 상임대표는
▷1952년 대구 출생 ▷학력 : 대구 대봉초, 부산 경남중·고 졸업,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학사 및 석사,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인류학과 철학박사 ▷경력 : 세계시민포럼 상임대표, 동아시아고고학연구소장, 가현문화재단 이사장, 한국박물관포럼 회장, 국제박물관협회 아시아 태평양지역 부위원장, 국제푸른방패 부회장, 모나코 왕립인류학박물관 과학위원, 국립박물관 문화재단 이사장, 국립박물관장, 국립한국전통문화학교 총장, 전곡선사박물관장,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한국박물관협회 회장, 한국대학박물관협회 회장, 한국구석기학회장, 한국박물관교육학회장, 국제박물관협회 한국위원장, 국제박물관협회 국가위원회 의장, 유네스코 아태지역 국제이해교육원 이사회 의장 ▷저서 : ‘아시아의 인류진화와 구석기문화’ ‘대한민국박물관 기행’ ‘한국민족기원의 신연구’ ‘전곡구석기유적과 축제’ ‘Paleolithic Age in Korea’ ‘세계시민학서설’(공저) ▷수상 : 한양대 최우수교수상, 명예연천군민, 위해 학술상, 자랑스러운 박물관인상, 백남석학상, 안산시문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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