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을 빛낸 출향인 <28> 양한광 서울대 암병원장
복강경 위암 수술 도입 선구자 “장기려 박사는 소중한 은사”
2008년 국제 위암 병기(病期) 분류가 새로워졌다. 서울대병원 위암 환자 데이터베이스를 주요 근거자료로 삼아 기준을 바꿨다. 우리나라 위암 분야 치료 실적에 관한 질적 수준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계기였다. 위암은 우리나라의 발병 빈도가 세계에서 가장 높다. 이 분야 진료와 연구 수준은 일본이 세계 최고였지만 이제 우리의 수준이 일본과 대등해졌다. 오히려 앞서고 있는 부분도 있다.
양한광(61) 서울의대 외과학 교수 겸 암병원장은 국내 위암 치료와 연구의 국제적인 성과를 주도하고 있다. 의사의 위암 치료 임상, 기초 학문과 임상 시험을 연계하는 중개연구 분야 연구실적 지표(H-index)는 세계적 위상을 말해준다. 그의 연구실적은 ‘위암’ 키워드로는 세계 12위, ‘위 수술’ 키워드로는 세계 8위이다. 내과와 병리과 등 서울대병원 동료 교수들이 세계 20위 내에 4명이나 포진하고 있어 종합적으로 서울대병원 위암 치료와 연구팀은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준이다.
서울대병원 위암센터를 10년간 이끌어 온 양 교수는 지난해 서울대 암병원장이 됐다. 병원 구성원들은 그가 병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의료윤리와 안전한 환자 진료’, ‘팀워크에 대한 기여’ 등을 중심으로 혁신적으로 바뀌었다고 평가한다. 양 원장은 국내에 복강경 위암 수술을 도입한 선구자다. 새로운 치료법과 장비 등을 도입할 때 엄격하게 환자 안전과 윤리를 우선하고 업체의 영업적 이익 연관성을 철저히 배제한 것으로 유명하다. 대한위장관복강경연구회를 창립해 복강경 위암 수술의 환자 적용 전 의사 교육 및 안전성과 효과를 검증했다. 대규모 국내 다기관 무작위 3상 임상시험을 위암 전문가와 함께 시행했다. 이를 통해 복강경 위암 수술의 과학적 근거 창출과 확산에 기여했다. 조기 위암 환자 치료에 대표적인 기능 보존 수술법인 유문보존 위절제술을 국내에 도입하고 그 안전성과 효과에 관한 학문적 검증 결과를 해외 유수의 저널에 지속적으로 발표했다.
그는 늘 ‘환자의 안전과 보호, 의료윤리’를 강조한다. 양 원장을 세계가 평가하고, 초청하고, 배우려는 가장 큰 이유다. 그동안 300여 회 해외 특강을 했다. 2008년 이후 10년간 11개 국가 320명의 해외 관련 분야 교수 및 전임의 등이 양 원장에게 배웠다. 최근 미국 영국 일본 이탈리아 등의 선진국에서도 행렬이 줄을 잇는다. 그는 “어떤 새로운 진료와 장비의 도입도 의사 개인이 최고가 되고 최초가 되는 것이 우선되면 안 된다. 업체의 이익을 우선하는 것은 죄악이다”고 강조했다. 양 원장을 지난 7월 16일 오후 서울 대학로에 있는 서울대 암병원장실에서 만났다.
-세계적 위암 전문 교수 어머니의 암 수술을 맡았다.
▶하버드 의대 메사추세츠 종합병원 외과 조교수의 이야기이다. 2008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자신의 어머니 위암 수술을 나에게 부탁했다. 그는 세계적 암전문병원인 메모리얼 스로안 케터링 암센터에서 위암외과를 포함한 종양외과를 전공한 의사다. 100년 전 미국 외과 의사들이 우리나라에 서양의학을 전했던 것을 생각하면 우리 의료역사에 의미하는 바가 큰 사건이다.
-해외 유명 대학병원에서 연수 방문이 끊이지 않는다.
▶독일정부연구재단의 지원으로 독일 쾰른대학 의대 의사가 2년간의 연구활동을 위해 방문했다. 그가 속한 병원은 유럽 상부위장관암의 중심이다. 이전에는 개발도상국 중심으로 많은 연수생이 다녀갔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미국과 독일 일본 중국 이탈리아 독일 등으로 매우 다양해졌다. 전공의를 갓 마친 전임의뿐 아니라 유명 대학 교수도 많이 온다. 심지어는 브라질 상파울루의 산타카사 의대, 중국의 베이징대학 암병원처럼 아예 병원 위암팀이 단체로 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나 개인의 실적만이 아닌 서울대병원의 탄탄한 연구 기반과 객관적이고 윤리적인 연구 및 진료환경에 따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위암 치료 후 사망률이 0.06%에 불과하다.
▶연간 250~300건의 위암 수술을 집도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의 위암 수술 누적 건수는 2019년 3만 명에 달했다. 양적 수준에서도 세계적이지만 수술 후 치료성적은 평균 합병증 12.4%, 사망률 0.06%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한 해 20~30회 해외 강의 등의 출장을 갔다. 종일 비행기를 타고 브라질을 몇 차례 다녀왔다.
-다섯 분의 스승에게서 배우고 자랐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버지의 스승과 대학 시절 은사와 그 은사가 소개해준 일본인 스승 등 모두 다섯 분의 스승을 만났다. 무엇보다 소중한 분은 한국 의료계의 슈바이처라 할 수 있는 장기려 박사다. 그를 어린 시절 교회에서 주일학교 교사로 만났다. 아버지와 장 박사의 연식정구 게임에 ‘볼 보이’로 공을 주웠다. 장 박사는 부산지역 의료와 한국 의료, 특히 간 절제술을 획기적으로 발전시켰다.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만들어 민간 의료보험 운동을 실천한 사회적 지도자다. 보육시설인 거제도 애광원을 중심으로 낙도의 고아들과 섬 주민을 무료로 진료했다. 청십자병원을 열어 30여 년간 저렴한 비용으로 좋은 진료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다. 부산대 의대와 고신대 복음병원에서 수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부산의 ‘늘행복요양병원’을 운영하는 양덕호(87) 박사가 아버지다. 부산대 의대 2회 졸업생인데, 장 박사를 친아버지처럼 극진히 모셨다. 병원 내 작은 집에서 함께 사셨다. 장 박사를 이어 청십자병원 제2대 원장을 지냈고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의 실행이사를 역임했다. 아버지는 “좋은 스승에게 배우라”는 큰아버지 권유를 따라 부산대 의대에 진학했고 장 교수를 만나 그의 제자가 됐다. 이후 복음병원 외과 과장을 거쳐 나이 마흔 중반 무렵 대청동에 복음외과의원을 열고 간과 위의 절제 등 큰 수술을 집도했다.
할아버지는 충남 공주 봉황동에서 공제(共濟)의원을 열었다. 연희전문대를 졸업하고 아흔 아홉의 나이로 돌아가시기까지 지역주민을 자신처럼 돌보셨다.
서울대 의대 은사 김진복 교수는 한국 위암 분야를 국제 무대에 처음 알린 분이다. 나는 그에게서 신의와 성실과 조화와 중립적 자세를 배웠다. 특히 서울의대, 연세의대, 고려의대, 가톨릭의대 등 국내 주요 대학의 위암 전문가를 조화롭게 잘 리드해가는 지도력에 큰 영향을 받았다. 내가 세계적인 의사가 되는 길로 이끈 일본의 키타지마 박사를 나의 스승이 될 수 있도록 소개해줬다. 키타지마 교수는 일본 위암 분야 대가로 세계적 학자다. 나를 친자식처럼 아끼고 돕고 격려했다. 몇 년 남은 나의 정년퇴직 때 축사를 내심 기대하며 기다렸는데 아깝게도 재작년에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키타지마 교수의 좌우명이 ‘성실, 노력, 인내’라는 것을 장례식에서 알게 되었다. 나의 삶도 그와 다르지 않다. 팀원들과 함께 하루하루, 1년, 5년, 10년, 20년을 꾸준히 연구한 결실로 세계 최고 수준의 위암센터가 되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고향 친구들과 우정이 깊다고 들었다.
▶어릴 적 부산 송도에는 어렵고 힘든 사람이 많이 살았다. 나처럼 (복음)병원 안에 사는 아이들과 병원 밖에서 사는 아이들은 확연히 달랐다. 머리에 기계충(머리 버짐)이 있고 검정 고무신을 신은 가난한 학생이 송도초등학교의 절반을 넘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사립 남성초등학교로 전학할 기회가 생겼다. 남성초등학교로 전학 가자는 어머니의 권유를 ‘거절’했다. 몇 년간 함께 지내온 ‘친구’들을 떠날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그때 만일 내가 그곳을 떠나 남성초등학교로 진학했다면 오늘의 나와는 달랐을 것이다.
나의 리더십의 원천은 중학교 학생회장 시절 만들어졌다. 아버지를 따라 충청도에서 옮겨간 부산에서 나는 (충청도) 말투로 늘 놀림의 대상이었다. 외톨이였다. 그런 나를 신설된 사하중학교 1회 선배들이 불렀다. 나는 3회다. 선배들의 권유와 지원으로 학생회장이 되었다. 학생회를 운영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부울경 메가시티가 지역 의료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국내 의료문제 중 심각한 것 중 하나가 지방 격차와 환자와 의료 자산의 서울 집중 문제이다. 지방병원의 전문성을 향상시키는 일과 2차 (종합)병원에서 암 수술 외과의사의 육성이 필요하다. 특히 병원의 고유서비스만으로는 수지 타산을 맞출 수 없는 의료수가 체계도 근본 문제 중 하나다. 원가에도 못 미치는 외과수술료로 지방 의대에서는 외과 전문의사를 구하기 벅차다. 심지어 전공의가 없는 곳도 있다. 부울경이 하나로 통합된다면 특히 의료전달체계의 변화와 의료전문인력 양성 및 훈련을 위한 교육기관과 시뮬레이션 센터 등의 공동 설립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그런 시설을 부산 혹은 경남과 울산만으로 운영하기 어렵고 세 지역 병원 간 중복투자 등의 비효율이 결국 환자를 서울로 내모는 판국이다. 의료전달체계를 통합 광역도시 내에 단일화하고 의료진 재교육과 의료계 종사자 교육과 훈련을 통해 수도권에 비해 수준 높은 의료서비스를 공급한다면 더는 부울경 지역 환자가 무작정 서울로 가지는 않을 것이다.
◇ 양한광 암병원장은
▷1960년 충남 공주 출생 ▷학력 : 부산 송도초, 사하중, 경남고 졸업, 서울대 의대 의학사·대학원 외과학 석사·박사 ▷경력 : 미국국립암연구소 방문펠로우, 서울대병원 외과 조교수, 부교수, 미국국립암연구소 초빙연구원, 서울대병원 위장관 외과 분과장, 암병원 위암센터장, 대한위암학회 이사장, 대한종양외과학회 이사장, 대한암학회 이사장(2020~), 서울대 외과학교실 주임교수 및 외과 과장, 서울대 암병원장(2020~), 서울대 의대 외과학 교수(현) ▷기타 : 일본 내시경 외과학회·유럽외과학회·미국 외과학회 명예회원, 폴란드 외과학회 명예회원, 대한민국 과학한림원 정회원, 유럽외과종양학회 명예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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