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을 빛낸 출향인 <25> 연세의대 강남세브란스병원 박효진 소화기내과 교수
위장관 전 분야 30년 연구 … 블로그로 환자와 소통하는 명의

 

박효진(62) 연세의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기초의학, 임상의학, 국제학회 회장을 지냈다. 소화기생리 연구와 기능성 위장 질환 분야에서 국내외 명성이 높다. 그는 위장 내시경과 대장 내시경 시술 전문가다. 숱한 악성과 양성 종양을 내시경으로 떼어냈다. 박 교수는 영국의 세인트막스(SAINT MARK’s)병원에서 대장생리 연구를, 미국 아이오와(IOWA) 대학병원에서 식도생리를 연구했다. 1992년 강남세브란스병원 소화기 내과 임상강사 때부터 30년간 소화기 생리 및 기능성 위장 질환에 관한 연구와 진료에 매진했다. 136편의 SCI급 논문을 발표했고 기능성 위장 질환에 대한 4권의 교과서를 저술했다. 1995년, 2002년, 2015년 소화기 연관학회 학술상 및 2019년 강남세브란스병원 최고 연구상을 받았다. 동물실험실에서 소화기 생리실험을 하고 해당 질환의 병태생리와 약물의 기전을 연구했다. 이를 임상 진료에 꾸준히 적용해왔다. 그의 진료가 명품의 격(格)을 갖는 이유다.

그가 20여 년 전부터 오늘까지 일관되게 수행 중인 연구주제는 ‘염증과 소화기 생리’. 그가 지도한 20여 명의 석·박사 제자가 대부분 ‘염증과 소화기 생리’ 주제로 학위를 취득했다. 지난 10년간 구축한 ‘감염 후 과민성장증후군 발생’ 코호트 연구는 연관된 논문에서 가장 많이 피인용(被引用)됐다. ‘식도 및 위 질환 분야EBS 명의’에 2015년, 2021년 두 차례 선정됐다. 2014년에 받은 강남세브란스병원 ‘우수 블로그 상’을 가장 자랑한다. 전문 언론에서 ‘설명 잘하는 의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의 능력은 의사로서만이 아니다. 조직 경영과 문학활동에까지 확장됐다. 강남세브란스병원의 암병원장, 검진센터장, 내시경센터장 등 그가 지나간 곳곳에는 그의 노력과 헌신이 스며 있다. 일관되게 조직의 미션과 비전을 수립하고 목표 가치를 정립해 목표와 방향이 흔들리지 않게 했기 때문이다. 블로그에서 수많은 환자를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이를 연구논문과 책으로 발표했고 시집, 산문집, 전문서적 등 다양한 저서도 남겼다. 박 교수는 도리스 메르틴의 저서 ‘아비투스(HABITUS)’에서 말하는 ‘품격자본’을 두루 갖춘 사람이다.

그는 “부울경 의료계가 발전하려면 좋은 의사 영입과 고가 의료장비를 신속히 도입할 수 있도록 지역 국공립병원에 대한 투자를 대대적으로 늘리고 경영자의 의사결정권을 높여주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를 지난 5월 25일 오후 강남세브란스병원 교수연구실에서 만났다.

-위장관 전체를 진료하고 연구한다.

▶소화기 기능 연구로 유명한 영국 런던 세인트막스병원에 연수한 덕이다. 대장을 공부했다. 다녀와서 소화기 기능 분야 연구를 계속했다. 1998년 미국 아이오와대학병원에서 식도를 공부했다. 한국은 2000년도부터 소화기 분야 위장관학회가 상부, 하부 위장관으로 나누어져서 후배들은 상부 혹은 하부 중 택일해야 했다. 나는 상·하부 다 공부하고 대장과 위장 내시경 모두 볼 수 있는 의사가 됐다. 덕분에 한국평활근학회장, 대한 소화기기능성질환·운동학회장, 아시아태평양소화관운동학회장을 역임했다.

-의대 교수로 출발하는 게 쉽지 않았다.

▶연세의대 임상강사 후 갈 곳이 없었다. 지도교수는 어디든 해외 연수나 다녀오라고 했다. 등 떠밀려 간 유학이다. 그렇게 찾은 영국의 세인트막스병원에서 오늘의 나를 시작하게 되었다. 대장 운동 질환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문 의과대학병원이었다. 자의 반, 타의 반의 유학이었지만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1994년 2월 전임강사로 돌아왔다. 연수 중 채 한 해가 되기 전 모교의 부름을 받은 셈이다. 대개는 부교수쯤 되어서 가는 해외연수 과정을 임상강사 때 다녀왔다. 런던의 박물관과 미술관 주말 투어도 했다. 주말마다 와인과 치즈 등을 배우고, 런던 근교 여행(필드 트립)으로 10주간 1000 파운드(약 150만 원)를 내고 등록을 했다. 영어 공부 겸 해설도 들으면서. 의학뿐 아니라 문화 예술적으로 콘텐츠를 쌓은 좋은 기회였다.

-다양한 실험기법도 익혔다.

▶미국 중서부에 있는 아이오와대학병원에서 생리실험과 분자생물학적 실험기법을 익혔다. 세계적인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자크가 미국 체류 중 9번 교향곡 ‘신세계로부터(From the New World)’를 만든 곳이 아이오와다. ‘IOWA’는 인디언 말로 ‘아름다운 땅’이란 뜻이다. 인구 7만 명의 이 도시는 1999년 미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도 뽑혔다. 대학과 대학병원 관계자가 주민 대부분을 차지한다. 소화기 내과 분야 세계적 석학인 제임스 크리스탠슨 교수가 40여 년 소화관 운동 연구와 진료를 하다 은퇴한 병원이다. 나의 지도교수였던 제프리 콘크린 교수가 그 뒤를 잇고 있었다. 1년3개월간의 실험으로 1저자로서 3개의 연구와 2저자로 2개의 연구에 참여했다. 비아그라가 식도 기능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도 했다. 후반 6개월 동안 내장 감각(Visceral pain)에 관해 연구했다. 2년 동안 1저자로서 6편의 논문 등 총 10편의 논문에 참여했다. 연수 기간 내내 실험실 전원을 마지막으로 끄고 퇴근했다.

-문화예술가와 사업가 기질도 있다.

▶아버지로부터 사업가와 문화예술가의 기질을 물려받았다. 형들도 사업가다. 어릴 때부터 부친이 경영하던 부산의 제일극장에서 ‘미성년자 관람 불가’ 영화를 보았다. 대중가요와 클래식 공연까지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를 경험했다. 문화예술에 대한 안목을 키우고 다양한 영역의 사람과 교류하고 협력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환자를 편안하게 해주는 ‘설명 솜씨’도 그때부터 싹 텄다. 병원 기부자를 모으는 일을 맡아 2년 만에 1억 원 이상 기부자를 16명에서 52명으로 늘린 것도 우연한 성과는 아니다. 이를 위해 매주 3, 4일 발에 땀이 나게 뛰어다니며 사람을 만나고 기부 참여를 설득했다.

-선친이 부산을 빛낸 100인에 선정된 바 있다.

▶아버지(박정관, 1913~1993)는 부산을 대표하는 기업가로 문화예술, 언론, 금융 등 다양한 분야의 사업을 하셨다. 아미동에 태양고등공민학교(1955~1995)를 세워 지역 불우한 학생을 교육했다. 알게 모르게 아버지 영향을 많이 받았다. 형제 중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다. 영미영화사, 민주신보, 한흥석유, 제일흥업(제일극장), 태진모방 등 여러 기업을 운영했다. 부산상공회의소 회장(2, 3대), 부산·경남 로타리클럽 총재를 역임했다. 문화와 예술 분야에 많은 관심을 두고 지원했다. 민주신보사 사주로 1965년 초대 ‘민전’(미술 전시회)을 열어 부산과 경남지역 화가들의 활동을 지원했다. 부산 KBS 악단 단장을 맡아 클래식 음악공연도 후원했다. 지금의 NH증권 전신인 부산투자금융 12명의 발기인 중 한 명으로 참여했다.

-극장에 얽힌 추억이 많다.

▶1960년대 말 처음 영화를 보았다. 화랑초등학교 시절 다니던 학교 근처 ‘서부창고’(당시 서부극장을 이렇게 불렀다)에서다. 첫 단체관람으로 갔는데 제목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선친이 제일극장과 영미영화사를 경영했다. 제일극장은 1957년 개관했다. 첫 상영작은 율 브린너의 ‘왕과 나(King and I)’였다. 그때는 시민회관 등의 공연 시설이 생기기 전이어서 제일극장에서 나훈아, 외국의 테너 가수, 발레 등의 공연이 열렸다. 어릴 때부터 다양한 문화예술 분야를 접할 수 있었다. 언제든지 극장에 자유롭게 갈 수 있었다. 예전에는 극장이 만원이 되면 직원에게 봉투에 ‘만원사례’가 적혀진 봉투에 1000원 혹은 2000원을 넣어 돌렸다. 그러다 남은 ‘봉투’ 한 개를 용돈으로 받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극장 초대권을 구해 주변 지인과 친구에게 인심을 쓰기도 했다. ‘사운드 오브 뮤직’,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제일극장에서 본 기억이 난다.

-고향에 자주 가나.

▶세브란스 부산 재경학우회장을 맡았었고, 해동고 재경동기회장을 맡았을 때는 재부 동문회와 네트워킹도 하고 재경 및 재부 합동여행을 대마도로 다녀오기도 했다. 어머니는 내가 의과대학을 졸업하기 전 해에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내가 전임강사로 발령 나기 전에 직장암으로 돌아가셨다. 처가가 부산에 있고 장모님이 요양병원에 계셔서 자주 간다. 부모님 산소가 기장군 월내에 있다. 아내는 울산과학기술원 교수로 있다.

-부울경 의료 발전을 위해 조언해 달라.

▶지자체의 국공립병원 관련 의사결정이 사립보다 더딘 경우가 많다. 장비 도입의 경우 부울경 지역에서 중입자 가속기 설치 이야기가 먼저 나왔다. 그러나 연세의료원이 내년 3월 국내 최초로 도입 설치한다. 얼마나 신속하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부울경 대학병원이 우수한 인력과 장비를 확보해야 한다. 수도권에 비해 부족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은 인재가 공대보다 의대로 다 모인다. 앞으로 행정과 경영에도 의사가 진출할 것이다. 병원 경영도 젊었을 때부터 제대로 배워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박효진 교수는

▷부산 출생(1959) ▷학력: 화랑초, 덕원중, 해동고 졸업, 연세의대 졸업, 석사, 의학박사, 영국 세인트 막스병원 연수, 미국 아이오와대학병원 연수 ▷경력 : 강남세브란스병원 임상강사, 전임강사, 교수, 교육수련부장, 부학장, 약사위원장, 소화기 내과 과장, 건강증진센터장, 암병원장, 연명의료윤리위원장 ▷학회 : 한국평활근학회장, 대한소화기 기능성 질환·운동학회장, 아시아 소화기 기능성 질환·운동학회장 ▷수상 : 제 5회 아시아대장학회 우수 전시상, 제 10회 아시아·태평양소화기학회 젊은 연구자상, 대한소화기기능성질환·운동학회 올해의 연구자상, 아시아·태평양학회 소화기학회지 트레블 어워드, 제 7회 대한소화기기능성질환·운동학회 아스트라 의학본상 ▷논문 : 역류성 식도염(Endoscopy, 2011), 소화성 궤양출혈에서 치료내시경(Gastrointest Endosc, 2018), 위궤양 치료 약제(J Clin Gastroenterol, 2021) ▷저서 : 소화관운동질환, 변비와 식사요법, 호산구 식도염, 겨울에 피는 꽃, 여백을 위한 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