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을 빛낸 출향인 <30> 이행희 한국코닝㈜ 대표이사
다국적 기업 여성CEO로, 삼성폰·현대차 신소재 혁신 기여

 

1986년 숙명여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비서직 외엔 뽑는 곳이 없어 전공을 살려 문화재관리국 임시직원이 되었다. 그러나 일주일 동안 잘못된 한자를 찾는 일을 하다 새길을 작정했다. 점심때는 영어학원으로, 퇴근 후에는 타자학원으로 6개월을 뛰어다닌 끝에 서울 여의도에 있는 신설 무역회사에 취직했다. 일당백의 역할을 해야 했지만 한가할 때도 있었다. 원 없이 책을 읽었다. 1년 후 회사는 문을 닫았다. 헤드헌팅 회사를 통해 세 번째 직장인 한국코닝㈜에 입사했다. 현대자동차 영어 계약서 80쪽을 타이핑하는 일이 첫 임무였다. 공부 안 하고는 따라갈 수가 없었다. 항상 야근하고 주말마다 나가서 6만 가지가 넘는 제품 공부를 했다. 영어 팩스 한 장 써 보내느라 몇 시간을 고민했다. 자신의 이름으로 보내야 하는 팩스 하나하나에 정성을 쏟았다. 입사 14년10개월 만에 미국계 다국적 기업 코닝(Corning Inc.)의 한국 사장이 되었다. 이행희(57) 한국코닝㈜ 대표이사의 이야기다.

미라 윌킨스 미국 플로리다 국제대학 명예교수는 1970년 하버드대학에서 출판한 ‘다국적 기업의 출현’에서 이렇게 말했다. (다국적 기업은) ‘해외에서 판매 활동 이상의 활동에 직접 투자하며, 현지국가의 전통에 적응하고 또 그것을 존중하는 한편 활동 무대인 현지국가의 규제와 규칙 아래에서 활동하는 기업이다’. 그러나 이 책이 출간된 당시 한국 내에서 다국적 기업에 대한 인식은 매우 부정적이었다. 노동력 착취와 역외 탈세의 온상쯤으로 보았다. 매판자본의 원흉으로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국내 진출 다국적 기업과 세계무대에 진출할 국내 기업은 불가분의 순치(脣齒) 관계가 되었다. 이 대표는 지난 17년간 다국적 기업의 한국 법인 대표이사로서, 다국적기업대표자 협회장으로서 이 같은 다국적 기업의 위상과 가치와 관계의 변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윌킨스가 말한 다국적 기업의 원형질 회복에 누구보다 앞장서 노력해 온 18년 차 CEO다. 대표 이사에서 물러나면 한평생을 ‘코닝문화’ 안에서 성장한 자신의 글로벌 경험을 재정립해 세계 곳곳을 찾아 봉사하며 살고 싶다는 은퇴 후 꿈을 가지고 있단다. 이 대표를 지난달 7일 서울 강남파이낸스센터 6층 한국코닝㈜ 회의실에서 만났다. “부모 손을 뿌리치고 해외로 나가 글로벌무대의 리더가 돼라”며 고향 후배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삼성 휴대폰과 현대자동차의 혁신적 변화 계기가 되었다.

▶삼성전자의 핸드폰은 세계 최고를 다툰다. 현대자동차 역시 세계적인 자동차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그 곁에 한국코닝㈜이 있다. 이 사실을 아는 우리 국민은 거의 없다. 2008년 삼성전자는 휴대폰 제작 생산에 코닝의 고릴라글라스를 적용, 감압식 스크린을 하이엔드 정전식 터치스크린으로 바꾸었다. 2007년 애플의 대표 스티브 잡스의 요청으로 만든 코닝사의 소재를 사용한 것이다. 2007년 국내기업에 이를 제안했으나 쉽지 않아 내가 직접 나서서 일을 진행했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최에 맞춰 자동차 배기가스에 대한 환경 규제가 국내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현대자동차의 배기가스 정화장치에 코닝의 기술이 적용되었다. 1975년 미국 자동차 회사 포드사의 요청으로 개발된 제품이다. 이 일의 계약서 타이핑이 나의 입사 후 첫 임무였다.

-거의 모든 산업의 기초소재를 제공하는 기업이다.

▶삼성전자 LG전자 삼성디스플레이 LG 디스플레이 삼성바이오로직스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SK텔레콤 SK 하이닉스 두산 코오롱 등 한국 주요 기업의 대부분이 고객이다. 우리 생활 전반에 코닝의 제품이 함께한다. 휴대폰 앞뒤에, 그리고 TV의 앞과 뒤에 들어간다. 노트북, 반도체 소재, 통신의 광섬유, 자동차 배기가스 정화 장치, 화이자와 모더나의 코로나 백신을 담는 특수용기(Vial)도 있다. 연구실험 장비와 자동차 전기 전자 환경 반도체 통신 광학소재 디스플레이 바이오 등 거의 모든 산업의 기초소재 제품을 만든다. 가장 오래된 미국 S&P 지수 500대 기업 중 하나다. 1851년에 에이머리 호튼경(1812~1882)에 의해 설립된 ‘코닝 글라스 웍스’가 전신이다. 첨단유리와 광섬유 등의 소재가 주력 제품이다. ‘코닝’의 한국지사 격 법인이 한국코닝㈜ 다. 1972년 한국에 진출, 1996년 독립법인을 설립했다. 본사는 미국 뉴욕주 코닝시에 있다.

– 매판자본의 앞잡이라는 비난도 들었다.

▶경영학 석사 과정을 공부하던 중 친구로부터 “너는 매판 자본의 앞잡이”라는 비난을 들었다. 그리고 과연 다국적 기업인 ‘코닝’이 매판자본의 앞잡이인지 냉정히 되돌아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무렵 ‘코닝’ 같은 회사,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170년 된 소재기술기업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그 친구로 인해 오히려 나는 코닝인(人)으로 일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덕분에 더 열심히 사명감을 가지고 일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2004년 대표가 된 뒤 한국코닝㈜의 비전을 만들었다. ‘코닝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고객이 경쟁력을 갖춰 세계시장을 리드하는 데 도움을 주며, 이를 통해 대한민국의 산업발전에 기여한다’이다.

-대표적 한국 기업을 다방면으로 도왔다.

▶2007년 현대자동차그룹과 코닝 사이에 기술혁신위원회를 만들었다. ‘코닝’의 CTO와 현대자동차 CTO 간 정례 회합도 했다. 처음에는 분기별, 나중에는 반기별로 가다 책임자가 바뀌면서 멈춰 섰다. 2008년에는 스크린 터치 개발에 코닝의 고릴라글라스를 적용하여 삼성전자 핸드폰의 스마트화를 촉진했다. 2010년에는 LG 그룹의 계열사 CTO 전원과 코닝연구소 간 핵심기술인력 협의도 주선했다. 글로벌계정(Global Account Management)을 새로이 도입해 국내 기업이 전 세계에서 사용하는 코닝제품의 총 물량을 예측해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원가 우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앞으로는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의 중소기업과 협업을 통한 글로벌화도 도울 계획이다.

-어머니 반대를 뿌리치고 서울행 첫차를 탔다.

▶3학년 때까지 진주 금성초등학교를 다니다 ‘학구’(學區) 위반으로 새로 설립된 봉원초등학교로 전학했다. 은초 정명수(1909~2001) 선생으로부터 한문 서예를 배운 것이 4학년부터다. 사군자를 솜씨 있게 쳐 상도 받고 교내에서 유명해졌다. 허허벌판 모래밭의 삼현중학교를 졸업했다.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가면 멀미가 났다. 고전을 좋아했고 풍성한 상상력을 더하는 ‘장자(莊子)’가 좋았다. 입학시험 마지막 학번으로 진주여고를 졸업했다. 그때까지 우리 집은 친구들의 사랑방이었다. 대학 진학 동기 60명 중 40명이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했다. “입고 있는 속곳을 팔아서 미국 유학이라도 보내겠다”고 하시던 어머니가 대학 진학을 앞두고 돌변했다. 경상대 사범대학을 마치고 교사를 하라는 것이다. 원서 마감 전날 밤 담임교사의 서랍을 펜치로 뜯어내어 한 장 남아 있던 숙명여대 원서를 움켜쥐었다. 동네 언니에게서 2만5000원을 빌려 가출하다시피 원서를 들고 서울행 첫차를 탔다. 하동군 출신으로 서울에서 사업을 하시던 아버지는 내가 고 1때 52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부울경의 상생발전에도 글로벌 경험과 시야로 조언할 수 있을 것 같다.

▶외국인들이 각각의 도시를 찾아올 수 있도록 지역별, 그리고 자연환경의 특색을 잘 살려 차별적으로 보존되고 개발되었으면 좋겠다. 이웃 일본의 도쿄와 고베가 그렇고 이탈리아의 밀란과 피렌체와 베네치아도 그렇다. 우리의 문제는 놀랄 만큼 아름다운 곳을 천편일률적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긴 안목으로 건축물을 만들고 도시재생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날림으로 개발해서 실망스러운 곳도 꽤 있었다. 통영도 그렇고, 거제, 남해의 보리암도 자연 배경이 얼마나 멋진 곳인가! 도시 하나하나에 제대로 집중할 수 있도록 전문가들의 참여를 보장하고 해당 지역에 힘을 몰아줘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

-고향 후배들을 위해 한 마디 남겨달라.

▶나는 어머니가 서울행을 허락해 주지 않아 새벽 첫 고속버스를 타고 가출하다시피 서울로 왔다. 나는 시골에서 서울로 왔지만 여러분은 한국에서 글로벌로 나가라. 한국이라는 틀을 벗어나 부모 손 뿌리치고 해외로 나가라. 마이크로소프트 대표도 인도 현지 대학 출신이다. 이제는 세계 무대에서 자기만의 철학을 펼쳐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자기 고유의 정신과 가치를 만들어 가야 한다.


◇이행희 대표는

▷경남 진주 출생(1964) ▷학력 : 진주 봉원초등, 삼현여중, 진주여고 졸업, 숙명여대 사학과 학사, 고려대 경영학 석사, 숙명여대 경영학 박사, 다터머스대 Tuck school 최고경영자과정 수료, 창조적 리더십 과정수료(CCL, USA) ▷경력 : 한국코닝 입사-무역업무담당, 첨단소재 및 신제품개발부문 영업담당, 환경제품부장, 숙명여대 경영학부 등 경영자과정 및 MBA 과정 등 강의, 환경제품 부문총괄, 한국코닝㈜ 사장 겸 대표이사, 한국능률협회 경영자교육위원, 다국적기업최고경영자협회장, 세계여성이사협회 이사 ▷저서 : 미니스커트 마케팅-불황시대의 마케팅 전략(2인 공저), 젊은 심장 세계를 꿈꿔라(6인 공저) ▷기타 : 아시아 월스트리트 ‘주목해야 할 아시아 10대 여성기업인’ 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