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을 빛낸 출향인 <29> 이희수 성공회대 석좌교수·이슬람문화연구소 소장
터키 첫 한국인 박사, 페르시아왕자·신라공주의 사랑 밝혀내

 

아랍의 침략에 멸망한 사산조 페르시아의 황제 야즈데게르드 3세는 왕자 페로즈 3세와 왕실 가족을 중국 당나라로 피신시켰다. 그러나 당나라는 새로운 아랍왕조와 손을 잡는다. 비운의 왕자는 다시 쫓겨난다. 여기까지는 이미 중국과 아랍의 역사에 있는 내용이다. 당나라를 떠난 왕자 일행은 신라에 정착한다. 페르시아 문물과 문명이 신라로 스며든다. 페르시아 왕자는 화랑도와 격구(폴로)를 즐기고 신무기를 전하며 신라의 삼국 통일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신라 공주와 결혼해 부마가 됐다.

신혼도 잠시, 페르시아 왕자는 신라 왕이 장만해준 배를 타고 공주와 함께 빼앗긴 조국의 회복에 나선다. 역부족으로 밀리고 밀려 카스피해 쪽 산악지대 ‘아몰’에 은둔 왕국을 세웠지만 결국 고토 회복에는 실패한다. 그러나 왕자 일행은 은인의 나라 신라를 기억하며 구전으로 내려오던 그곳에서의 삶을 11세기 대서사시의 형태로 기록으로 남겼다.

1000년 전 페르시아어로 전해 오던 신라에 대한 대서사시 ‘쿠쉬나메’의 대강이다. 필사본으로 전해져 왔던 이 책은 전체 820쪽 중 500쪽이 신라에 관한 이야기다.

‘쿠쉬나메’의 한글본 완역을 통해 지금까지 숨겨져 온 신라와 페르시아 간 잊혀진 역사적 사실이 곧 드러날 전망이다. 쿠쉬나메의 원본을 찾아 이를 세상에 드러낸 이가 한국 최고의 이슬람 중동학자 이희수(68) 성공회대 석좌교수 겸 이슬람문화연구소장이다. 그는 2007년 이란과 한국 간 비정치적인 학술 교류를 제안하고 한·이란 공동 고고학 발굴에 나섰다. 그렇게 만난 이란의 학자 다르유시 아크 바르자데가 ‘신라’가 주로 묘사된 고문서의 존재를 알려줬다. 이 희귀본을 소장하고 있는 영국 국립도서관 측과 몇 해에 걸쳐 접촉과 방문, 설득한 끝에 원본을 확보했다.

문화인류학자로서 평생을 중동 현장에서 살면서 연구해온 이 교수의 절대적 명제는 ‘모든 진실은 현장에 있다’이다. 이를 위해 테러와 전쟁 위험에 기꺼이 노출됐고 생명의 위협을 안고 살아야 하는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1978년 말레이시아 현장 연구를 시작으로 40년간 터키 사우디아라비아 튀니지 이집트 이란 쿠웨이트 말레이시아 우즈베키스탄 등 현장에서 연구를 이어왔다. 터키 방문만 165회가 넘고, 100여 권의 관련 분야 저술을 남겼다. 그는 “4차 산업혁명 준비 못지않게 이슬람 세계와 중동을 우리 경제와 산업의 고객으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제 인문학으로도 세계 일등을 하자”는 이희수 성공회대 석좌교수를 지난 7일 경기도 의왕시에 위치한 연구소에서 만났다.

-일찍이 중동과 이슬람 전문가로 나섰다.

▶외국어대학에서 터키어를 전공하고 터키 국립 이스탄불 대학에 유학했다. 이스탄불 대학교 최초의 한국 유학생이자 첫 한국 교민이다. 1982년 터키 대통령 방한 당시 체결한 한·터키 문화교류 협정으로 터키 국립대학에 국비유학생 자리가 생겼다. 터키의 첫 한국인 박사로 1호 한국인 교수가 됐다. 2001년 9·11 테러로 인생과 학문적 중요성의 대전환을 맞이했다. 글로벌 ‘테러와의 전쟁’ 중에 이슬람과 중동의 ‘내재적 관점’에서 미국의 ‘일극’ 체제와 군사적 개입주의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 매년 200회 이상 강연했다. 9·11과 함께 출간된 저서 ‘이슬람’이 석 달 만에 10만 부, 1년간 20만 부가 팔리는 베스트 셀러가 됐다.

-미국과 서구는 아프가니스탄과 대테러 중동 전쟁에서 실패했다.

▶미국 통계(요르단의 통계는 그 수치가 훨씬 높다)에 따르면 글로벌 테러는 대(對)테러 전쟁 후 10배 가까이 늘었다. 테러리스트 한 명을 제거하는 데 민간인 8, 9명이 사망한다. 사망자의 가족 등이 분노집단에 합류하니 한 명의 테러리스트 제거로 오히려 10배의 테러 증가를 낳았다. 이슬람 세계에서도 알카에다와 IS(이슬람국가)는 반이슬람적 범죄집단이다. 그러나 미국의 대테러 전쟁으로 무고한 가족들이 희생되면서 극단적인 분노를 가진 복수집단이 늘어나는 것이 문제다. 미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2600조 원을 퍼부었다. 서구는 테러에 대한 강력한 응징보다 전쟁고아의 심리치료와 일자리를 제공해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되돌리는 일에 그 돈의 십 분의 일이라도 썼어야 했다.

-자살폭탄 테러는 코란에서 금지하고 있는 범죄행위다.

▶이슬람이 거의 1000년 동안(651~1683) 유럽을 지배했다. 나폴레옹 이후 200년간은 다시 유럽이 이슬람을 지배하게 됐다. 그 기간 유럽이 이슬람 사회에 행한 고문과 학살, 인종청소 언어말살은 이루 다 표현할 수 없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두 세계는 화합하기 힘든 응어리가 있다. 설상가상으로 팔레스타인 문제로 강경파 이슬람이 등장했다. 1988년 이전에는 이슬람 세계에서는 자살폭탄테러 자체가 거의 없었다. 코란은 시신이 있어야 내세에 부활한다고 믿기 때문에 자살테러를 엄격히 금지한다. 2003년 조지 W. 부시의 이라크 전쟁이 오늘의 테러와 갈등으로 이끌었다. 이라크 전쟁은 곧바로 IS라는 급진적 테러조직에 절호의 기회를 만들어 줬다.

-이슬람 중동에서는 종교가 없으면 위험하다.

▶대부분은 중동에 가서 크리스천이라고 말하면 테러라도 당할까 무서워한다. 그러나 이슬람에서 기독교인은 굉장히 존경받는다. 중동 사람은 종교 없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종교가 없다고 하면 대사관에서 비자 발급도 제대로 안 해주는 경우도 많다. 다른 종교에 비해 크리스천이 훨씬 유리하다. 현재도 아랍에는 2500만 명가량의 아랍인 크리스천이 살고 있다. 다만 선교는 불법이다. ‘우리가 존재하기 때문에 나는 존재한다’는 공동체 정신을 바탕으로 존재 정체감을 느끼는 이슬람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이슬람 중동 57개 국가, 19억 인구는 지구촌의 1/4이다.

▶우리는 지구상 인구의 4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57개 국가 19억의 인구를 가진 중동과 이슬람을 (미국과 서구의 관점으로) 적대적 당사자로 접근한다. 그러나 이제 달라져야 할 때이다. 철저한 시장과 고객 입장에서 실리를 찾아 우리의 시선으로 글로벌 문화를 바라봐야 한다. 중동은 인류문명과 영성의 본산이다. 중동 전역에서 일고 있는 한류의 대유행과 최고의 코리아 브랜드 가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국내 유입 이슬람 관광객 200만 시대에 걸맞은 ‘할랄 산업’ 투자와 금융, 채권 시장 개방이 이루어진다면 우리 경제에 활력소가 될 것이다.

-탈레반과 네트워킹하는 실용적 외교를 제안했다.

▶알카에다와 IS는 테러조직이지만, 탈레반 하마스 헤즈볼라 등은 현재 집권 정치조직이다. 미국과 탈레반이 2년10개월간 아프간 정부를 배제하고 직접 평화협상을 진행하고 합의에 이르렀다. 아프가니스탄의 미래 논의를 아프간 정부가 아닌 탈레반을 선택한 것은 탈레반이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강경 이슬람 정치조직이라는 태생적 정체성은 변하지 않겠지만 ‘이란식’으로 최고지도자는 율법을, 행정부는 전문가를 앞세워 서구와 협상해 투자와 지원을 유치하게 될 것이다. 이게 성공하면 테러는 지금보다 훨씬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도시로서의 부울경에 문화적 인프라가 확충되어야 한다.

▶지역 단위의 개체적 독립성,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부울경이라는 통합 단위의 경제적 블록화와 공동체 정신을 만들 수 있다면 주민들의 삶에 더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가덕도 신공항은 1500년 전 동북아 물류 허브로서의 역사적 위상을 되찾는 계기가 되고, 깊은 교류 역사, 특히 해륙 관문으로서 하늘길이 연결되면서 21세기 물류 메가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글로벌 도시로서 흡인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수준 높은 문화적 인프라가 더욱 확충돼야 한다. 부산국제영화제 같은 글로벌 이벤트가 매년 열리고 세계적인 공연예술, 건축의 아이콘화도 병행되면 좋겠다. 참여형 문화 향유 프로그램의 개발과 창의적 확산, 풀뿌리 예술가나 문화기획자를 지원해 수준 높은 콘텐츠 개발과 상용화로 경제와 문화를 접목할 필요가 있다.

-고향 후배들을 위한 격려와 조언은.

▶중동에서는 누구나 낙타걸음을 걸어야 살아남는다. 천천히 뒤를 돌아보지만, 앞만 보고 뚜벅뚜벅 한 걸음씩 걸어간다면, 언젠가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누구든 먼저 가면 길이 되고 최초가 되고 나중에는 최고가 된다. 남들이 하지 않는 일을 기꺼이 찾아가고, 가지 않는 길을 찾아 두려워하지 말고 나서라고 말하고 싶다.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 ‘오리엔탈리즘’과 아마르티아 센의 ‘정체성과 폭력’을 일독하기를 추천한다. 고인이 되신 나의 아버지는 늘 당신의 자녀들에게 ‘손에서 책을 놓지 마라’고 하셨다. 책 읽기를 생활화하면 좋겠다.


◇이희수 석좌교수는

▷1953년 경남 밀양 출생 ▷학력 : 경남고, 한국외국어대 졸업, 터키 이스탄불대학 역사학 박사 ▷경력 : 이슬람역사문화연구소(IRCICA) 연구원, 튀니지 사회경제연구소(CERES) 연구원, 터키 마르마라대학 중세사학과 조교수, 한국중동학회장 겸 한국이슬람학회장, 미국 워싱턴대 교환교수, 한양대 도서관장·박물관장·문화재연구소장·세계지역문화연구소장, 외교부 정책자문위원회 아프리카중동분과 위원장,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성공회대 석좌교수 겸 이슬람문화연구소장, 계명대 특임교수, 한국·터키친선협회 사무총장, 중앙아시아학술연구소(IICAS,우즈베키스탄) 학술위원 ▷저서 : 이희수의 이슬람, 이슬람 학교 1·2, 세상을 바꾼 이슬람, 터키사 등 ▷역서 : 금의 역사, 중동의 역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