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을 빛낸 출향인 <23>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전 벤처기업협회장
대한민국 1호 벤처 39년 경영…의료보험청구SW 개발도
경남 의령중 2학년 첫 달에 중퇴하고 서울 충무로 외산 가전제품 상가의 수리업체에서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국내 가전 3사는 대리점도, A/S 체계도 없던 때였다. 당시 고급 외산 제품도 마찬가지. 고장 나면 전파사에 맡겨서 수리하다 더 크게 망가뜨리기 일쑤였다. 흑백 TV에서부터 컬러 TV 오디오 VCR 냉장고와 에어컨까지 다양한 제품과 진공관, 트랜지스트, IC(집접회로 반도체)까지 다루며 전자기술의 원리를 익혔다. 밤낮으로 2년 반을 익혀 ‘꼬마 일류 기술자’로 불렸다. 불현듯 “너는 공부해야 한다”며 붙잡던 중학교 2학년 담임 선생님이 생각났다. 검정고시를 거쳐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교직원들의 가전제품을 수리해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 고등학교도 마쳤다. 인하대 전자공학과로 진학 후 열다섯 살 어릴 때 배운 기술이 큰 빛을 보았다. 학교의 시계탑과 방사능 측정 장비를 수리한 뒤로는 아예 학교 실험 기자재 등의 관리를 도맡아 매년 400만 원을 벌었다. 한 학기 등록금이 50만 원할 때다. 몇몇 대학에 제공된 애플 PC(개인용 컴퓨터)가 전산학과에서 사용하기에는 용량이 적고, 전자공학과에선 프로그래밍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이를 독차지해 소프트웨어 코딩을 독학으로 익혔다. 그 기술로 1982년 국내 최초의 소프트웨어 패키지인 의료보험청구프로그램 개발에 성공한다. 1983년 8월 15일 대학 3학년 때 대한민국 벤처 1호 비트컴퓨터㈜를 창업한 조현정(64) 회장의 지난날 이야기다.
TIOBE INDEX(tiobe.com/tiobe-index) 기준 8월 4일 현재 전세계 컴퓨터 언어 1위 사용 C는 11.62%, 2위 사용 JAVA는 11.17%, 3위 C++는 8.01%이다. C++와 JAVA가 원래 C에서 시작한 것이니 여전히 절대적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은 C다. 초기 국내 소프트웨어 개발자의 절대다수는 COBOL(코볼) 사용자였다. 현재 사용 빈도는 26위로 사용률 0.5%에 불과하다. 유독 이웃 일본에서만 개발자 30% 이상이 여전히 코볼을 사용하고 있다. 우리가 일본을 뛰어넘어 세계적인 IT 강국으로 자리 잡은 것은 이 느리고 확장성 없는 컴퓨터 언어 코볼을 퇴출하고 확장성과 속도에서 탁월한 C 중심으로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구축했기에 가능했다. 1990년 설립된 비트컴퓨터 부설 ‘C교육센터’를 중심으로 고급기술자 양성에 나섰다. 지난 6월 9일 오후 서울 서초동에 있는 사옥에서 그를 만났다.
-소프트웨어 기반을 혁명적으로 바꾸었다.
▶1989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개발자의 95% 이상이 C가 아닌 코볼 등을 사용했다. 전자통신연구원(ETRI) 산하 전전화교환기 개발팀 30~40명, 삼성전자 몇 명, 삼보컴퓨터와 서울대 카이스트 박사 과정 몇 명 정도가 C를 사용하고 있을 때다. 이 두 언어는 레이어(Layer·層)가 다르다. 코볼은 한 사람이 프로그램을 전부 다 짜야 한다. 그러나 C는 클래스(Class·연속성) 개념으로 다른 사람이 짠 프로그램 클래스를 서로 끼울 수 있다. 조립 장난감 레고블록으로 탱크, 비행기 등을 만드는 것처럼 확장성이 무한하다. 개방적 설계(Open Architecture) 구조는 응용(Application) 언어와 구조화된(System) 언어가 있다. 구조적 프로그램은 C로 짜야 한다. 속도가 엄청 빨랐고 세상이 C로 바뀔 것 같았다. 그러나 처음에는 C를 배우려는 지원자가 거의 없었다. 개발자를 배출해도 채용하는 기업이 없었다. 심지어는 C 개발자라는 것을 숨기고 입사하게 했다. “코볼로 짜라고 하면 코볼과 C 둘을 함께 짜라. 코볼은 모듈(Module·단위)화가 안 된다. 랭귀지 옵션 없으면 C로 짜라”고 가르쳤다. 유럽의 언어가 알파벳에서 나왔듯 C에서 C++와 JAVA가 나왔고 이들이 대세다.
-벤처기업과 한국 소프트웨어산업 발전의 주역이다.
▶1995년 혁신경제 생태계를 만들어 보자고 이민화(메디슨), 변대규(휴맥스), 장흥순(터보테크), 이찬진(한글과컴퓨터), 김형순(로커스), 장영승(나눔기술) 등과 함께 13명이 만든 조직이 벤처기업협회였다. 아날로그 경제를 디지털 경제로, 오프라인 경제에서 온라인 경제로 바꾸는 운동을 전개했다. KOSDAQ(코스닥) 시장 개설, 벤처기업육성을 위한 특별법, 구로 디지털단지, 판교 벤처단지 등의 벤처생태계를 구축하는 데 노력했다. 1999년 7월 24일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 회사를 방문, ‘IMF 시기에 경제의 희망이 되는 벤처 붐’을 선언했다. 직후 코스닥 지수가 거의 3배에 달하는 2830까지 치솟기도 했다. 현재 벤처기업 수가 3만8193개, 코스닥 시가총액이 2020년 말 390조 원에 이른다. 2004년부터 2006년 사이 벤처기업협회 제3대 회장을 역임했다. 1988년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 창립 때부터 참여해 회장 재임 6년(2013~2018)간 협회 규모를 3배 가까이 키웠다. 소프트웨어의 국가 자격체계를 만들었고 관련 법의 전면 개정 추진을 주도하고 소프트웨어 제값 받기 등 관련 제도를 개선하고 정책을 정비했다.
-대학생 창업으로 시작해 벌써 39년 차 대표를 맡고 있다.
▶2019년 기업생멸행정통계(통계청)에 따르면 전체 기업의 평균 수명은 7.52년이다. 비트컴퓨터㈜ 39년의 역사는 이들 기업 평균 수명을 훌쩍 뛰어넘는 긴 세월이다. 벤처와 소프트웨어 분야 ‘최고 스승의 경지’인 구루(GURU)가 되겠다는 일념과 대한민국 최초의 소프트웨어 개발자이자 창업자로서 초심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비트컴퓨터㈜는 그동안 의료정보시장 국내 점유율 1위 기업으로 태국, 우크라이나 등 13개국에 진출했다. 통합의료정보서비스 등의 공급을 통해 헬스케어 플랫폼 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비트교육센터를 부설로 두고 있다. 코볼 중심의 한국 소프트웨어 업계를 C로 만든 주역이다. 잘하는 개발자를 더 잘하게 하는 하이앤드(High-End) 개발자 양성이 목적이다. 경쟁률이 평균 6 대 1이다. 9000여 명의 수료생이 평생 취업률 100%를 이룰 만큼 상위 1%를 양성하는 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개인 사재를 털어 2000년 조현정장학재단을 만들었다. ‘개천에서 용 나기, 희망 사다리 놓기’의 일환으로 전국 모의고사 성적 상위 2% 이내로 성적이 우수하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해왔다. 전교 꼴지하다2020년 수능시험에서 만점을 받아 유명해진 김해외고 졸업생 송영준 씨도 우리 재단 장학생이다. 8월 현재 30억2000만 원의 장학금과 교수 연구를 위한 학술지원금을 지급했다. 1997년 7월 코스닥에 상장했다. 자본금 83억 원 직원 수는 170명, 지난해 매출은 372억8254만 원이다.
-일찍 떠나 온 고향에 관한 추억이 애틋할 것 같다.
▶김해 한림면(舊 이북면) 안명초등학교는 1940년 강습소로 시작해 1945년 대홍수로 유실됐다. 해방 전후 어수선한 때라 학교 살림은 피폐하고 정부의 능력은 미치지 못할 때였다. 1948년 새로운 교지 위에 번듯한 교사(校舍)로 새롭게 출발한 것은 전적으로 당시 한림면장이었던 부친(조형래)이 부지를 내어놓고 건축비를 희사한 덕분이다. 어린 시절 그런 아버지의 이야기를 자부심으로 삼고 흔들리지 않고 살았다. 1963년 내가 6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남은 재산이 없었다. 3남 4녀 형제자매와 어머니는 뿔뿔이 흩어졌다. 어디에서든 살아남아야 했다. 한때 마을 부잣집 차남이었던 나는 초등학교를 세 번을 옮겨 다녔다. 중학교에 입학, 2학년 3월 한 달을 겨우 보냈다. 더는 버틸 수 없었다. 갓 생긴 고속버스를 타고 열다섯 어린 나이에 무작정 외삼촌이 산다는 서울로 향했다. 어린 치기에 학교를 안 다녀도 된다는 것이 좋기도 했다. 그때 떠나 온 뒤 성년이 된 후로는 아버지 기일에 맞춰 한 해 한 번은 고향에 간다.
-부울경 메가시티의 발전을 위해 조언해 달라.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물리적인 공간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람과 시장이 중요하고 시장보다는 사람이 중요하다. 사람은 머리 수가 아닌 전문인력이 중요하다. 특히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많아야 하고 무엇보다 최고 수준의 실력자를 확보하는 것이 필수다. 사람 키우는 예산을 확대해야 한다. 1년에 6만 명, 5년에 30만 명의 고급 소프트웨어 인력을 길러내야 한다. 미국은 화물차와 고속버스 무인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 같은 미래산업에 도전해야 한다. 승자독식의 시대다. 1등 할 수 있는 새로운 것을 찾아야 한다. 지난해 부산에 본사를 둔 의료정보 전문기업인 자인컴을 인수 합병했다. 내년에는 비트교육센터 부산교육장도 설립할 예정이다.
◇ 조현정 회장은
▷경남 김해 출생(1957) ▷학력 : 서울 용문고, 인하대 전자공학과 졸업, 인하대 명예공학박사 ▷경력 : 비트컴퓨터㈜ 대표이사 회장, 인하대 겸임교수, 대한의료정보학회 부회장, 조현정학술재단 이사장, 기술거래소 이사장, 벤처기업협회장, (재)한국공학한림원 정회원, YES리더스 단장, 한양대 특임교수, 고용노동부 청년고용 홍보대사,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장, ㈔코스닥협회 고문 ▷수상 : 서울올림픽 공로상(1989.4 체육부 장관), 정보문화기술상(1998.6 국무총리), 데이터베이스대상(1998.12 국무총리), 보건복지신지식인(2002.12보건복지부 장관), 동탑산업훈장(2000.9 벤처기업대상), 은탑산업훈장(2010.11 소프트웨어산업대상), 금탑산업훈장(2019. 12 소프트웨어산업대상) ▷위원회 : 국민안전심의위원, 검찰개혁추진위원(2016~2017) ▷저서 : 컴퓨터 여행(바른사,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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