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을 빛낸 출향인 <11> 이병건 SCM 생명과학 대표
매출도 없던 줄기세포 기업 상장…M&A로 세계시장 공략

 

미래시장 변화를 예측하고 주도하는 능력, 인수합병(M&A)과 투자 유치를 끌어내는 리더십은 바이오 기업 대표(CEO)의 필수요건이다. 관련 분야 연구개발 등 다양한 경험과 깊이 있는 이론적 체계도 갖춰야 한다.

미국 휴스턴은 메디컬 바이오 분야 선도 도시다. 미국에서 가장 큰 병원 콤플렉스가 몰려 있다. 앰디엔더슨(MD Anderson) 암센터, 텍사스(Texas) 의대, 베일러(Baylor) 의대 등이다. 자연스럽게 의료공학이 발달했다. 이병건 SCM 생명과학 대표는 서울대에서 화공학으로 학부와 석사를 마친 뒤 이곳 미국 휴스턴의 라이스대학에서 화공학을 공부했다. 휴스턴의 의료 관련 자원을 접하면서 의공학으로 진로가 바뀌었다. ‘혈관 내 마찰력에 따른 생리현상’을 규명하는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인공심장 개발을 위한 기본 연구다. 위스콘신대학 박사 후 과정에서 의학과 고분자 분야 연구를 심화했다.

최근 들어 치매 등 뇌 질환과 항노화에 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법이 주목받고 있다. 탁월한 효능과 저렴한 비용, 다양한 질환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줄기세포 치료법은 여전히 제한적이고 글로벌 시장도 막 기지개를 켜는 상황이다. 그래서 한국도 한 번쯤 도전해 볼 만한 분야다. 줄기세포 관련, 전 세계 7개 허가 제품 중 첫 3개가 한국 내에서 이루어진 제품이고 국내 수십 개 바이오벤처기업이 연구와 개발을 거듭하고 있다. 일찍이 이 사업의 가능성에 주목한 이 대표는 2018년 5월 SCM생명과학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숨 가쁘게 국내외 투자를 유치했다. 500억 원을 단숨에 채웠다. 매출도 없이 연구개발에 빠져 있는 회사를 보란 듯 코스닥 시장에 기술상장 시켰다. 그는 첫 타석에서 솔로홈런을 친 데 이어 연타석 홈런을 준비하고 있다.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해 지속 가능한 세계적 바이오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해 인수합병에 나섰다.

줄기세포 치료제에서 면역세포 치료제로 영역을 확장했다. 시장도 한국에서 미국과 유럽으로 확장하고 있다. 이 대표는 “줄기세포치료제 분야가 반도체 시장이나 자동차 시장보다 엄청나게 큰 시장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 그는 서울에서 태어났지만 부산에서 초중고를 다니며 잔뼈가 굵은 부산 사람이다. 그는 “부울경 지역 특성상 해양 바이오 분야에 특화한 연구개발에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인터뷰는 지난달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아셈타워 37층 제우스룸에서 이뤄졌다.

-글로벌 바이오 기업 대표의 길을 숨 가쁘게 달려왔다.

▶공부를 마치자마자 LG가 미국 캘리포니아에 세운 합작 바이오 연구소에 과장급 선임연구원으로 취직했다. 1987년 1월께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한 시작이었다. 이듬해 4월 오랜 미국 유학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했다. 그 후 LG, 삼양사, 녹십자, 종근당 등 대기업에서 제약사의 경영 전반을 경험했다. 중간에 잠시 미국으로 다시 건너가 유전자치료제를 개발하는 첨단 바이오 벤처기업의 대표로 경영 수업을 쌓기도 했다. 신약 개발과 기업 경영까지 차분히 수십 년에 걸쳐 한 걸음, 한 걸음 헤쳐올 수 있었던 것은 안정된 생활 기반과 굴곡 없는 인생 여정도 한몫을 했다. 인생의 환갑을 지나 제품은 허가가 되지 않고 기업은 상장되지도 않은 바이오 벤처로 자리를 옮겼다. 세계 무대를 향한 본격적인 도전이다.

-취임 26개월 만에 SCM 생명과학을 코스닥에 상장시켰다.

▶2014년 7월에 설립된 SCM 생명과학은 줄기세포 치료제와 면역세포 치료제를 개발하는 세포 치료제 개발 전문기업이다. 줄기세포 분야에서는 층분리배양법이라는 원천기술을 이용해 건강한 사람의 골수로부터 고순도의 줄기세포를 분리 배양하고 이 세포를 이용해 근원적인 치료가 어려운 면역 관련 질환 치료제를 개발한다. 현재 임상이 진행 중인 과제로는 중등증 이상 아토피 피부염, 만성 이식편대숙주질환, 급성 췌장염 등이 있다. 만성 이식편대숙주질환은 백혈병 환자가 타인의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으면 50% 정도가 면역거부반응이 일어나 장기부전 등의 부작용이 생기는 희귀질환이다. 면역세포 분야에서 수지상세포를 이용해 항암백신을 개발하는 미국 코이뮨사를 2019년에 인수했다. 2023년 미국 나스닥 시장에 상장할 계획이다. 면역세포인 T 세포에 암세포를 인식하는 유전자를 조작한 차세대 CAR-T 세포를 이용해 백혈병을 치료하는 이탈리아 포뮬라사를 2020년 4월에 인수하고 6월에 ‘기술성 특례’를 통해 코스닥 시장에 안착했다.

-국제적 M&A에 성공한 과정과 비전을 상세히 들려달라.

▶국내 바이오 기업 간 M&A는 흔하지 않다. 2019년 2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 위치한 바이오벤처 회사 코이뮨을 국내 바이오 벤처인 제넥신과 공동으로 인수했다. 항암 면역세포 치료제를 개발하는 기업으로 전이성 신장암에 대한 임상 2상을 미국에서 진행 중이다. 2020년 4월에는 이탈리아 바이오벤처 기업 포뮬라를 인수합병했다. 차세대 CAR-T를 이용한 백혈병 치료제를 개발 중인 회사인데, 첨단 바이오 의약품 제조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뮤노믹이 개발 중인 수지상 세포를 이용한 항암제의 공정개발과 생산을 공동으로 수행하고 있다. 이뮤노믹은 국내 바이오벤처 ‘에이치엘비’가 50% 정도의 지분을 보유한 미국 바이오벤처 회사다. SCM생명과학은 국내에서도 ‘차바이오텍’과 CMO 계약을 체결해 향후 상업용 생산까지 준비했다. 국내 코스닥 상장에 성공한 SCM생명과학과 해외에서 인수한 코이뮨으로 ‘쌍끌이 채비’를 마쳤다. 코이뮨의 2023년 나스닥 상장은 ‘쿠팡’에 이은 또 하나의 성공 신화가 될 것이다.

-국내 줄기세포 치료제 사업의 현실은 어떤가.

▶줄기세포 치료제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황우석 박사가 개발하던 분야인 ‘배아줄기세포’로, 난자 사용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와 암 발생 위험에 대한 해결책이 과제다. 다음은 국내외 많은 회사가 개발 중인 ‘성체줄기세포’로, 건강한 타인의 골수나 제대혈을 이용해도 면역거부반응이 없다. 암 발생 위험도 거의 없어 가장 많은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나머지 한 분야는 피부세포 등의 역분화 과정을 거쳐 원하는 세포로 만드는 기술로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개발 중인 ‘유도만능줄기세포’가 있는데, 암 발생에 대한 우려가 아직도 존재한다고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주로 성체줄기세포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고 세계에서 최초로 성체줄기세포 치료제를 허가받아 판매 중에 있다. 2011년에 허가받은 심장질환 치료제인 파미셀의 하티셀그램이다. 두 번째 제품은 2012년에 허가받은 메디포스트의 골관절염 치료제 카티스템이다. 제대혈을 이용한 것으로 히딩크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포함해 현재까지 2만여 명이 사용했다.

-국내외에서 다양한 제약 및 바이오 관련 기업에서 활동했다.

▶1990년 LG 연구소 초대 안전성 센터장으로 국내 제약 및 바이오산업의 활동을 시작했다. 신약 개발에 필요한 비임상 업무와 약물전달시스템 업무를 맡아 세계 두 번째로 2주 지속형 소 성장호르몬 개발에 성공했다. 삼양사 초대 의약사업본부장으로 기존 연구 결과를 사업으로 전환하는 일도 했다. 수입에 의존하던 생분해성 수술용 봉합사를 국내에서 최초로 개발, 이 분야 세계 2위가 되었다. 익스프레션 제네틱스의 CEO로 미국 바이오벤처를 경험했다. 바이러스를 사용하지 않는 난소암 유전자 치료제를 개발, 미국 FDA 임상허가를 받았다. 국내 백신, 혈액제제 전문 제약사인 녹십자에서 전무, 부사장과 대표를 지냈다. 이 기간에 잊을 수 없는 일은 2009년 신종플루 팬데믹 때 2500만 명분의 백신을 국내에서 생산해 공급한 것이다. 전남 화순 백신 공장 완공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기적 같은 성과였다. 국내에 100명 정도의 환자밖에 없는 희귀병인 헌터증후군 치료제를 세계 2번째로 개발하기도 했다. 2017년 종근당 부회장으로 자리를 옮겨 바이오사업 기반 구축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2018년 SCM생명과학 대표로 왔다.

-부울경의 바이오산업을 위해 조언해 달라.

▶한국 바이오산업이 글로벌 선도회사에 비해 워낙 격차가 커서 같은 분야에서 경쟁은 쉽지 않다. 그 대안으로 개발 중인 우수 후보 물질을 기술 수출하는 것으로 목표를 선회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는 글로벌 산업으로 성장시키기 어렵다. 따라서 부울경 동남권에서는 특화된 해양바이오 클러스터를 만들어 니치마켓(틈새시장)을 집중 공략하는 것이 좋다.

-고향 후배를 위해 한마디 해달라.

▶젊은이가 꿈을 꾸고 이루어 가기가 어려운 상황이 되는 것 같다. 그렇지만 자신만의 차별화 전략으로 정진하면 그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스스로 돌아보아도 큰 기복 없이 지냈다. 남은 삶 잘 정리해서 쌓은 경험을 후배와 사회에 전수하고 싶다.


◇이병건 대표는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나 부산 화랑초등학교, 경남중학교,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75년 서울대학교 화공학과에 입학, 석사를 마치고 1985년 미국 라이스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어 LG화학 바이오연구소 초대 안전성 센터장(1987~1993), 삼양사 초대 의약사업본부장(1994~2001), Expression Genetics, Inc 대표이사(미국 2002~2004), 녹십자·녹십자 홀딩스 대표이사(2004~2017), 종근당 부회장(2017~2018), 한국바이오협회 이사장(2013~2018)을 지냈다. 현재 SCM생명과학 대표이사(2018~), 첨단재생의료 산업협의회 회장(2018~) 국제백신연구소 한국후원회 이사장(2018~)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