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을 빛낸 출향인 <12> 패션그룹 형지 최병오 회장
1조 매출 K패션 거인 “부산 섬유산업 글로벌화로 부활을”
부산 사람 특유의 거침 없는 말투, 꾸미지 않는 말은 단순 명료하다. 패션그룹 형지 최병오 회장의 말과 태도에는 그가 걸어온 삶이 온전히 담겨 있다. 최 회장은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쓰러지고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그는 1조 원대 매출을 달성한 국내 최대 규모의 패션그룹 오너가 됐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를 잃었다. 참으로 긴 세월 혼자 지독한 외로움과 싸웠다. 세상 살면서 숱한 어려운 결정을 해야 할 때마다 그리웠다. 때론 원망스러웠다. 사업이란 늘 부침이 있기 마련. 20대에 이미 그 사업의 장에서 죽고 싶을 만큼의 힘든 시기를 겪은 그다. 그때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27살에 결혼하고 곧이어 첫 부도를 경험했다. 그를 성공으로 이끈 힘은 지치지 않은 열정이다. 무엇보다 겸손함으로 최선을 다하는 그의 자세가 최고의 성공 요소다. 대표적 사례가 서울 동대문시장에서 영세 상인 시절 처음으로 만난 싱가포르 크로커다일 창시자인 다토 탄 회장 사이에 있었던 일이다. 곤란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솔직하게 공개하고 그의 조언과 요구를 경청했다. 최 회장은 중국 공장에서 일하다가도 그가 한국에 오면 지체 없이 달려왔다. 결국 탄 회장은 친아버지처럼 마음을 나누는 사업 파트너가 됐다.
오늘도 그의 책상 위에는 탄 회장이 그에게 남긴 ‘인생 철학’을 새긴 돌판이 단단하게 자리하고 있다. ‘생각은 창의적으로, 일은 근면하게, 곤경에 처한 경우에는 긍정의 자세로, 성공은 겸허한 자세로 임한다’.
그는 지금도 골프를 치지 않는 드문 사업가다. 늘 단정하고 겸손을 입에 달고 사는 예를 중시하는 신사이다. 여러 대학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적지 않은 대학을 지원했다. 젊은 시절 학교 공부를 많이 하지 않은 삶에서 오히려 ‘교육이 최고의 복지’라는 신념을 갖게 됐다. 그는 부산 섬유패션 산업의 부활과 글로벌화를 꿈꾼다. 악어 한 마리가 힘차게 용틀임하는 서울 역삼동 패션그룹형지 본사 사옥 7층 집무실에서 지난달 8일 그를 만났다.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고 그는 주저 없이 답했다. 대화가 군살 없이 간결했다.
-어린 시절을 어렵게 보냈다고 들었다.
▶그때 꿈은 배를 타고 망망대해로 나가는 것이었다. 이름 모를 나라, 미지의 세계로 향해 달리는 벅찬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부산해양고등학교 입시에서 보란 듯이 낙방했다. 공부도 못했고 가세도 기울어 동아중 야간부를 겨우 마친 때였다. 용두산 공원 밑에 있는 부산고등기술학교에 진학했다. 그나마도 채 다 마치지 못하고 포기할 뻔했다. 주저앉아 집에 드러누웠을 때 몇 번이고 찾아와 나를 설득해 학교로 돌아가게 만든 스승이 있었다. 중도 포기하지 않고 학교를 졸업하게 해 준 김회국 선생님을 지금도 잊지 못하고 있다. “병오야! 무슨 일이든 멈추면 안 된다. 포기하지 말아라. 내일 일은 모르는 법이다”고 하신 그 말씀이 지금도 종종 귓가를 울린다. 어쩌면 그때부터 조금씩 변했는지 모른다. 우왕좌왕하고 집중 못 하고 잘 지치던 내가 시작한 일은 끝까지 이루어 가는 사람으로 변했다.
-회사명과 CI가 특별하다.
▶‘불꽃 화(火)’가 3개 들어 있는 ‘등불 형(熒)’ 자를 썼다. 내 이름 가운데 자인 ‘불꽃 병(炳)’에도 ‘불꽃 화 ’가 들어 있다. 어려웠던 사세가 어느 날 불같이 일어났다. 이남식 전주대 전 총장과의 만남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전주대에서 명예박사 학위도 받고 고위 과정도 마쳤고 학생들에게 특강도 했다. 어느 날 그를 만나 전주대학교의 CI(로고와 사인들의 일체화 프로그램)가 마음에 든다고 했더니 디자인한 회사를 소개해주었다. 그 회사에서 토털패션의 전문기업에 맞는 로고와 디자인을 만들었다. 사명이 형지어패럴에서 패션그룹 형지로 바뀌게 된 것도 그때다.
-국내 관련 기업 중 가장 많은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다.
▶18개 브랜드가 있다. 남성용 와이셔츠와 여성용 캐주얼부터 중고 학생의 교복과 구두, 가방과 골프웨어에 이르기까지 패션의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공급하고 있다. 그 중 ‘크로커다일 레이디’가 가장 애정이 간다. 그다음은 까스텔바작이고, 60년 기업으로 남성과 여성용 정장 구두와 가방 액세서리 등을 생산 공급하는 에스콰이아도 있다. 특히 크로커다일레이디는 단일 브랜드 3000억 원 매출을 달성하며 형지를 일약 패션기업 선두에 올려주었다. 2016년 9월 브랜드를 인수한 프랑스의 까스텔바작 또한 성공작이라 할 수 있다. 2015년 5월 세계 최초 여성 아웃도어인 와일드로즈도 인수했다. 1993년 스위스 여성 산악인 도드 쿤즈가 선보인 것으로 패션그룹형지가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형지가 ‘성장통’을 앓고 있다.
▶수년간 크고 작은 건물을 지었다. 하단의 아트몰링, 양산의 물류센터, 인천 송도에 건축 중인 대규모 글로벌패션복합센터 등이다. 건축에 너무 많은 시간을 들였다. 사업의 핵심에서 멀어져 힘들게 되었다는 아픈 자책도 한다. 나는 부산에 가면 국제시장 근처에는 한때 가지 않았다. 어릴 때 겪은 말 못 할 아픔이 그곳에 있다. (인터뷰 다 마칠 때까지 그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았고 그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때와는 다르지만 요즘 많이 어렵다. 오래전 하단에 아버지의 ‘횟가루’ 공장이 있었다. 그 인근 장소에 복합쇼핑몰 아트몰링을 세웠다. 코로나로 인한 어려움을 예견할 수 없었다. 입점 기업이 어려우니 자연스럽게 우리 회사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20대에 페인트 가게에서 시작한 사업이 일흔을 앞둔 나이에 패션만으로 1조 원 규모로 성장했다. 오는 9월 글로벌 시대에 대비하는 시설과 규모를 갖춘 인천 송도 글로벌패션복합센터가 준공될 예정이다. 형지그룹이 모두 한곳으로 모인다. 새롭게 미래 패션의 길을 열어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최근 아들(최준호 사장)이 까스텔바작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2016년부터 형지I&C에서 딸(최혜원 대표이사)이 경영해오고 있다. 2세 경영체제로의 전환에 어려움이 없을 수 없다. 이 시기를 이기는 것이 결국 나의 삶과 사업의 완성으로 귀결될 것이다. 반가운 소식은 형지엘리트가 중국 교복 시장 진출 4년 만에 흑자로 전환했다. 올해 중국 교복박람회에서 1200여 개 참가 업체 중 그랑프리를 차지하기도 했다. 2억2500만 명 중국 교복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어 기대가 크다. 형지I&C 역시 일본과 미국 아마존에 진출했다. 패션 골프웨어라는 새로운 반향을 불러온 까스텔바작은 한국콜마와 협력을 통해 패션화장품을 출시한다. 아픈 만큼 더 성장할 것이다.
-다수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첫 명예박사 학위 때는 솔직히 그것을 얻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그다음부터는 모두 자연스럽게 주어졌다. 고위 과정도 많이 다녔다. 그 과정을 통해 얻은 것이 많다. 내 생각을 좀 더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것,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보는 것, 무엇보다도 나의 식견이 넓어졌다. 그리고 원우와 교수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너무 젊은 나이에 일찍 ‘장사’(그는 사업과 장사가 다를 바 없다며 매출 1조가 넘는 사업을 일구고도 이 표현을 쓴다. 자신을 낮추는 것으로 이해된다)에 나서서 제때 필요한 공부를 하지 못한 것이 늘 나를 움츠려 들게 했다. 그럴수록 더 열심히 교육 현장에 나를 보냈다. 그래서 나는 기업 경영에도 전사적인 교육시스템 구축에 열의를 다하고 있다.
-골프를 안 하는 이유가 있나.
▶워낙 어려운 형편에서 숱한 삶의 곡절을 겪었다. 어쩌면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을 것이다. 여전히 많은 과제가 앞에 남아 있다. 55세가 되기 전 어느 날 “55세, 5500억 원을 달성하면 골프를 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기적처럼 그 목표가 이루어진 때에도 골프채를 손에 잡지는 못했다. 이제는 규모도 웬만큼 커졌고 아들딸도 자기 위치에서 회사를 돕고 있으니 골프를 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사업의 어려움은 없어지지 않고 있다. 어쩌면 사업가에게 사업적 어려움과 곤란은 숙명이 아닌가 한다.
-부산섬유정책포럼 상임대표를 맡고 있다.
▶전통산업인 섬유와 패션산업이 여전히 어렵다. 글로벌화되어야 살 수 있다. 그동안 고향 부산의 패션과 섬유산업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함께해왔다. 한때 부산은 지리적으로 섬유패션산업이 유입되는 창구였고, 지금도 강한 인프라를 갖고 있다. 조선방직, 대진실업, 광덕물산 등 의류섬유산업을 대변하는 우량기업이 있었다. 앞으로도 부산 섬유패션산업 발전을 위해 해외 공장의 국내 유턴, 스마트 공장 건립, 부산 패션비즈센터 운영에 앞장서고자 한다. 고향 부산의 섬유와 패션산업 부활을 꼭 보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가덕신공항을 적극 환영하고 크게 기대한다. 24시간 세계인이 모여드는 국제공항이 되면 공항에서 해운대까지 직선 도로와 철도가 열리고 부산의 산업은 활발해질 것이다. 자연스럽게 섬유산업의 세계 진출도 활성화될 것이다.
◇최병오 회장은
▷부산 출생, 사하초, 동아중, 부산고등기술학교 졸업, 연세대 경제대학원 AEP 수료, 서울대 경영대 AMP 수료, 한국뉴욕주립대 스마트CEO과정 수료, 와튼-KMA CEO과정 수료, 부산대 명예경영학박사, 전남대 명예철학박사
▷주요경력: 패션그룹형지 회장, 한국의류산업협회 회장, 한국섬유산업연합회 부회장, 부산대 AMP 총동창회장,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 부산섬유패션정책포럼 상임대표,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수석부회장
▷상훈: 철탑산업훈장(2004), 은탑산업훈장(2010), 한국의 경영자상(2012. 한국능률협회), 공정거래의날 대통령표창(2013), 한경 다산경영상 창업경영인 부문 수상(2018), 한국산업의 브랜드파워 10년 연속 1위(2020. KMAC), 대한민국 100대 CEO 10년 연속 선정(2011~2021. 매경이코노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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