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을 빛낸 출향인 <32> 스페인 대도 박천욱 대표이사
주방장이 일군 태권도 용품업체 신화…올림픽 공급권도 따내

 

스페인에 있는 유한회사 대도(DAEDO) 박천욱(65) 대표이사는 경남 사천시 사남면 출신의 스페인 교민이다. 1981년 3월 맨손으로 홀로 바르셀로나에 첫발을 디뎠다. 3년 여 식당 주방장으로 번 돈을 모아 1983년 ‘노타리아도’ 거리에 태권도 용품을 생산하는 대도인터내셔널을 설립했다. 1986년에는 바르셀로나 시내 소매점도 열었다. 1987년 마침 바르셀로나에서 제 8회 세계태권도 선수권 대회가 열렸다. 당시에는 거금인 5만 페세타(유로화로 통일되기 전 스페인 통화로 현재 한국 돈 5000만 원 상당)를 투자, 첫 세계대회 공식 스폰서가 됐다.

2002년부터 세계태권도연맹의 공인업체로 2003년 독일, 2005년 스페인 마드리드, 2007년 베이징, 2009년 덴마크, 2013년 멕시코, 2017년 한국 무주, 2019년 영국 맨체스터 세계대회에 이르기까지 세계 태권도 주요 대회 공식 스폰서를 맡았다. 2010년에는 대도의 전자호구 시스템이 세계태권도연맹의 첫 연맹 공인 전자호구 제품이 되었다. 첫 적용은 2012년 런던올림픽. 2016년 리우올림픽과 코로나19로 한 해 연기돼 올해 열린 도쿄올림픽에도 도입됐다. ‘대도전자호구’가 3번의 올림픽 태권도 경기의 공식용품이 된 셈이다.

그러나 그의 인생은 냉대와 멸시의 어두운 먹구름이 뒤덮인 어린 시절을 아프게 건너야 했다. 열아홉의 나이로 동갑의 아버지와 결혼한 어머니는 아버지가 입대한 뒤 두 살 아래 터울의 여동생을 낳고 심하게 산후풍을 앓았다. 시부모를 모시고 남편 없이 어린 자녀와 살아야 했던 어머니는 잠시도 쉴 새가 없었다. 손가락이 휘어진 어머니를 다들 문둥병 환자 취급했고 급기야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했다. 만나는 동네 사람은 수군대기 일쑤였다. 박 대표가 다섯 살 때의 이야기다. 어디서나 부딪히는 어머니를 부끄러워했다. 우연히 마을 버스를 타고 가던 어머니가 아들의 얼굴을 보고 쥐어 준 과일을 받지 않고 외면했다. 마음으로는 한시도 떠나 보낼 수 없었던 그 어머니와 재회하고 관계를 회복한 것은 그러고 10년 뒤였다.

그는 이런 인생사를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아무도 원망해본 적 없어요. 무엇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해 본적도 없고요.” 이제 연간 1000만 달러 이상을 전 세계 100여 국가에서 벌어들이는 세계적인 태권도 전문기업 경영자가 된 박 대표를 지난 9월 10일(현지시간) 스페인 까탈루냐 에 있는 그의 회사에서 만났다.

-중학교 3학년을 못 마치고 부산으로 야반도주했다.

▶사천에서 7, 8년 여 승승장구하던 아버지의 사업이 어느 날 여지 없이 무너졌다. 아버지는 동네 논과 밭을 빌려 뽕나무 묘목을 심어 정부에 공급했다. 묘목의 수매가 끝나면 택시에 돈 포대를 싣고 와서 인건비와 논밭 주인에게 정산했다. 마지막 해에 절정에 올랐던 사업은 예고 없이 시행된 정부의 수매 중단으로 주저 앉았다. 빚더미에 나 앉았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진주에서 1년 반 떠돌다 돌아왔다. 막상 어려워지니 친척도 도와주지 않았다. 그 무렵 아버지는 다시 일어나 경사진 밭 3000평을 빌려 고추를 심었다. 아버지와 함께 똥장군에 물을 지어 날랐다. 고추가 붉게 익어 갈 무렵 이번에는 태풍이 휩쓸고 가버렸다. 연이은 두 번의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울었다. 돌파구가 필요했다. 열네 살 가을 어둠을 틈타 잘 말린 고추 한 가마니를 아버지 몰래 등에 졌다. 윗동네 주막에서 친구 두 명과 막걸리를 나눠 마신 뒤 곧장 부산으로 향했다. 아는 사람들과 만날까 봐 사천이 아닌 삼천포 방향으로 밤길을 걸었다. 등짐은 더 지탱하기 어려웠고 사천 마을 삼거리에 있는 약국의 닫힌 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3만 원에 고추를 통째로 넘기고 부산행 첫 차를 탔다.

-스페인에 정착한 지 40년이다.

▶1969년 어느 날 부산진역에서 먹고 자며 노숙을 하다 “공부를 시켜준다”는 멋진 신사를 만나 따라 나섰다. 의사인 자신의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하면 공부 시켜준다”고 했다. 공부가 절실했고 어디서든 먹고 살아야 했다. 그렇지만 그의 일탈적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병원을 나와 식당 일을 시작했다. 삶의 전기(轉機)가 됐다. 열여섯 살 때인가, 기장 바닷가 중국식당에서 일할 때는 겨울에도 연탄 불을 빼고 이불 한 장 없이 얼음 방에서 새우잠을 잤다. 고향 사천으로 돌아가 식당을 열었더니 동네 깡패들의 등쌀을 이길 수 없었다. 부산으로 다시 나가 식당일로 알게 된 어느 주방장의 소개로 난생 처음 스페인에 발을 들였다. 김포공항을 출발해 타이페이와 홍콩을 경유한 비행기는 폭우도 만나고 탑승 시간도 놓쳐 무려 5일이 걸렸다. 1981년 3월의 일이다. 첫 6개월간 매일 아침 신문 가판대를 찾아 그날의 스페인 신문 제목을 찾아 읽었다. 그렇게 3000 단어를 외웠다. 비로서 혼자서 스페인 생활이 가능해졌다. 당시 라스팔마스에 외가 친척 아저씨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1982년 무렵, 식당 일로는 비전이 보이지 않아 일자리를 부탁했다. 돌아온 답은 없었다. 주방장으로 번 돈의 70~80%를 3년간 꼬박 모았다. 결혼할 아내가 한국에서 가져온 중고 재봉틀 다섯 대에 현지에서 두 대를 더 사서 보태 1983년 첫 사업을 시작했다.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 놀랍다.

▶아디다스를 비롯한 글로벌 업체와 경쟁을 뚫고 올림픽 공급업체가 됐다. 전 세계 100개 국 이상이 대도의 전자호구를 사용하고 70여 개국에 대리점을 갖고 있다. 세계 전자호구의 90%가량 대도가 공급한다. 대도의 장비는 태권도에서 가라테, 유도까지 확대됐다. 매출의 15%가량을 제품 보완 등 연구개발에 재투자한 덕분이다. 미국 디즈니사와 손잡고 마블(Marvel)의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캡틴아메리카, 헐크 등 슈퍼히어로 이미지를 적용한 호구, 머리·팔·다리 보호대, 장갑을 제작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올림픽을 비롯한 세계 대회와 국가 단위 대회를 공식 후원하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대도는 최고의 품질, 믿을 수 있는 제품을 만든다는 장인정신을 지키고 있다. 기업명인 대도는 할아버지께서 대도(大道)를 쓰시면서 “대도는 단순히 큰 길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큰 길을 다닐 수 있도록 떳떳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하신 가르침에서 따왔다.

-크고 작은 경영위기가 있었다.

▶지난해 코로나 19로 매출이 반 토막 났다. 비용을 줄여 가까스로 적자를 면했다. 올해는 순항 중이다. 예전의 매출과 이익 규모를 넘어서는 좋은 성과를 기대하고 있다. 원래는 내년까지 지금 회사 자리에 객실 100개 규모의 호텔을 짓기로 했다. 설계도 마쳤고 은행과의 협의도 끝났다. 그러나 코로나가 오기 직전에 다행히 이를 무기 연기했다. 지금의 어려움은 견딜 만하다. 사업을 갓 시작할 무렵 뒷돈이 없어 밀려오는 주문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때가 가장 힘들었다. 원단을 먼저 사야 하는데 대책이 없었다. 얼굴도 잘 몰랐던 스페인 노인 사업가가 흔쾌히 원단을 외상으로 공급해줬다. 2008년 금융 위기로 잘 나가는 회사를 포기해야 하는 절대 위기에 빠졌던 때가 있었다. 청산전문변호사와 담당 판사의 도움으로 오히려 법정관리를 통해 10년 만에 부채 제로(0)의 초우량 기업이 됐다.

-교민사회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했다.

▶바르셀로나 한서 교회에서 수석장로를 맡고 있다. 유럽지역 기독실업인회(CMBC)에서 활동했다. 현재 민주평통 스페인 지회장으로 있다. 까딸루냐 한인회장(2016~2019)으로서 1988년 개설됐다가 1992년 문을 닫은 바르셀로나 총영사관을 2019년 1월 재개설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교민을 위한 체육대회와 음악공연 등의 문화예술 활동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타국에 있어도 고향은 자주 방문한다.

▶매년 세 번 이상은 고국을 찾았다. 나를 낳아준 어머니가 살았던 부산과 아버지와 나를 길러준 어머니가 계신 고향 사천에 제일 먼저 달려간다. 고추 망태 메고 야반도주할 때 도와준 친구들도 다 잘 살아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고향 초등학교 동문 자녀들을 위한 장학금도 지급해왔다. 부울경이 하나로 통합하는 길을 간다고 들었다. 기여할 부분이 있다면 힘껏 돕겠다. 어찌 고향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박천욱 대표는

▷1956년 경남 사천시 사남면 출생 ▷사천 가천초, 용남중 중퇴, 진주재건학교 수학, 중학교학력인정 검정고시 합격 ▷1983년 스페인에서 태권도용품 생산·공급기업 대도 창업 ▷1987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제 8회 세계태권도 선수권대회 공식스폰서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 태권도 용품 공급 ▷2002년 세계태권도연맹 공인업체 ▷2003년 독일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공식스폰서 ▷2005년 스페인 마드리드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공식스폰서 ▷2007년 중국 베이징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공식스폰서, 바르셀로나 본사건물 준공 ▷2008년 중국 베이징 올림픽 태권도 예선전 공식스폰서 ▷2009년 덴마크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공식스폰서 ▷2010년 대도전자호구시스템 세계태권도연맹 공인계약 ▷2012년 영국 런던 올림픽 전자호구 및 태권도 용품 공식 공급업체 ▷2013년 멕시코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공식스폰서 ▷2016년 브라질 리우 올림픽 전자헤드기어 첫 공급 ▷2017년 무주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공식스폰서 ▷2018년 올림픽 운영업체 오메가와 태권도 경기 전자호구와 헤드기어 시스템 공급계약 ▷2019년 맨체스터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공식스폰서, 국제태권도연맹(ITF) 경기용품 공인계약 ▷2021년 오메가와 전자호구 및 헤드기어시스템 공급 계약 ▷2003~2014년 기독실업인회 바르셀로나 지회장 ▷2015~2019년 18·19대 스페인 까딸루냐 한인회장 ▷2011년~ 민주평통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