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을 빛낸 출향인 <38> 김기동 변호사
원전비리 파헤친 검사 출신 “사회 기여한단 일념으로 일해”

 

원자력발전의 찬반 논란은 여러 나라에서 계속되고 있다. 프랑스처럼 원전에 적극적인 나라가 있는가 하면 한국과 대만에서는 탈원전 정책을 놓고 여론이 충돌한다. 1978년 4월 29일 고리 1호기의 가동으로 우리는 세계 21번째 아시아 4번째 원전 보유국이 됐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폭발과 중단에 따른 방사능 누출사고 여파는 아직 지워지지 않고 있다. 2013년 여름은 많이 뜨거웠다. 예전에 비해 일찍 온 폭염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정부는 전력수요 확보를 위해 비상전력체계 점검에 나섰다. 기업과 민간이 블랙아웃을 막기 위해 전기사용 줄이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원전 핵심부품 검사와 공급 비리로 인한 두 곳의 원자로 가동 중단이 원인이었다. 일부에서는 그해 5월 28일을 ‘한국원자력 국치일’이라고 명명했다. 당일 한국은 신고리 2호기와 신월성 1호기 가동을 중단시켰다. 원전 가동에 필수적인 제어시스템 납품업체 직원의 국민권익위 고발로 전국민적 공분이 비등했다. 함량 미달의 불량제품 공급을 폭로한 것이다. 한수원, 한전, 부품업체, 검사기관 관계자의 담합이 밝혀졌다. 100일간의 수사로 100여 명의 관련자가 기소됐다.

김기동(57) 변호사는 당시 부산 동부지청장으로서 ‘원전비리수사단장’을 맡아 수사를 지휘했다. 생소한 원전 관련 공부를 위해 가동 직전의 신설 원전을 전 직원과 함께 샅샅이 훑었다. 과로에 지친 검사들이 링거를 맞으며 투혼을 불살랐다. 그렇게 만들어진 수사 결과물은 한 권의 보고서가 됐다. 한국원자력안전시스템 전반에 관한 개선 방안을 담아 총리실에 제출했다. 원전 관련 전문 검사기관이 생기고 부품 납품에 관한 이중 제어장치도 마련됐다. 부산을 비롯한 원전 밀집지역 주민들도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 사건은 한국의 원전안전시스템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계기가 됐다. 원전 마피아의 부패 실태 파악과 재발 방지책이 마련됐다.

당시 중동 아랍에미리트(UAE)의 바라카에 우리 원전 2호기 착공식이 열렸다. 이 사건으로 물 건너갈 뻔했던 UAE 원전 유지보수계약이 성사됐다. 한국 정부의 사건 처리와 후속조치에 신뢰를 보낸 것이다.

2019년 검찰을 떠나 변호사로 출발한 지 갓 2년을 넘긴 그는 “검사 재직 시절 가장 자랑스럽고 보람 있었던 일이 원전 비리 수사였다”고 자평했다. 지난달 1일 서울 서초구 반포대로 뒷골목에 위치한 ‘변호사 김기동 법률사무소’에서 그를 만났다.

-변호사 생활은 어떤가.

▶변호사는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사람을 법적으로 도와주는 직업이다. 의뢰인의 입장에서 억울함을 풀어주면서 보람을 찾아가는 자리라고 할 수 있고, 나름대로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다. 내년에 뜻이 맞는 분들과 ‘강소 로펌’을 만들어 보고 싶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사건을 비롯해 대형사건의 변호인이나 기업의 고문을 맡은 것은 검사 시절 대형사건을 많이 처리했기 때문인 것 같다. 변호사는 형사소송법에 의해서 보장된 의뢰인의 권리가 보호되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런 역할은 대형사건이나 작은 사건이나 동일하다.

-검사 시절 ‘특수통’으로 유명했다.

▶주어진 임무를 열심히 했다. 원전 비리 수사는 원전 운영 전체를 재정비하는 성과를 낳았다. ‘통영함 사건’도 방위사업 전체를 구조적으로 개선하는 계기가 됐다. 2014년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장을 맡아 수사를 지휘했다. 침몰 선박의 위치를 탐지하는 수상 구조함의 핵심 소재나 부품이 제대로 작동되지 못했다. 130여 명 인력으로 정부합동수사단이 꾸려졌다. 방위사업시스템의 허점과 비리가 광범위하게 드러났다. 특히 무기중개상들의 범죄가 두드러졌다. 수십 명이 사법처리 됐다. 방위사업청의 인적 구성이 군 중심에서 민간 중심으로 바뀌었다. 군사기밀이라는 이유로 감시를 소홀히 한 것이 비리를 만연하게 했다. 이 사건 이후 ‘방위사업감독관’제가 신설됐다.

-거제 대우조선해양 사건을 수사한 적도 있다.

▶2016년 과거 중수부의 장점을 살린 한시적인 대검찰청 부패범죄특별수사단 초대 단장이 됐다. 대우조선해양이 수사 대상으로 지목됐다. 수조 원에 이르는 국민의 혈세가 투입됐지만 부실이 심화했다. 분식회계 실체를 밝혀내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전 대우조선해양 사장 2명과 전 산업은행장을 비롯해 수십 명을 기소했다. 외부감사를 담당한 회계법인도 분식회계 공범으로 기소했다. 검찰 사상 처음이다. 전원 유죄 판결에 중형이 선고됐다. 외부감사 시스템을 과거 기업이 결정하던 회계법인을 ‘지정감사제’ 도입으로 금감원이 전체 풀에서 지정하도록 바꿨다. 회계의 투명성이 획기적으로 강화됐다. 부패비리 수사의 모델 케이스다.

-정치 검사라는 일부 지적도 있었다.

▶수사를 많이 한 검사의 숙명이다. 평검사 때부터 수사 분야에 주로 근무했다. 부장, 차장, 검사장이 되어서도 중요 수사의 책임을 맡았다. 특수통이라고 불렸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이를 화려하게 그리곤 하는데 사실과 전혀 다르다. 극도의 긴장감과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다. 1년 내내 주말을 반납하는 것은 기본이다. 매일 자정이 넘어서야 집으로 향했다. 그나마도 쪼들리는 수사비로 택시요금 내기도 부담스러웠다. 다행히 기획재정부에 근무하는 고교 선배의 조언을 얻어 제도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 부패구조를 바꾸고 부패한 자를 처벌하는 것을 보람으로 삼았다. 이 중 부패사건이 정치와 연관될 때가 많다. 원치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인 사건을 맡을 때도 있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도곡동 땅과 BBK건,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불법 정치자금건 등이다. 피하지 않고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했다. 어떤 결론이 나도 정치적 공격은 있다. 후배에게 부담 주지 않으려 인사교체 직전에도 내가 시작한 수사는 내 손으로 마무리 짓고 떠났다.

-부산지검장을 떠날 때 남긴 고별사가 화제였다.

▶29년 6개월 공직에서 일했다. 24년 6개월 동안 검사였다. 특히 검사 시절 수사 검사였던 나는 천길 낭떠러지 옆을 걷는 긴장감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렇지만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한다는 일념으로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런 경험을 바탕으로 같은 길을 가는 후배 검사에게 충언을 남겼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 범죄를 낱낱이 밝히고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게 하는 것이 최고의 검사다. 그러나 수사는 개인의 삶과 국가나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크고, 필연적으로 수사를 받는 사람에게 큰 고통과 아픔을 줄 수밖에 없다. 아무리 유능하고 노련한 검객이라도 많은 전투를 치르다 보면 자신도 크고 작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수사는 삼가고 또 삼가는 마음으로 임해야 한다. ‘나무는 목수의 먹줄을 받아들일 때 기둥이 되고, 사람은 주변의 충고를 받아들일 때 인재가 된다’고 들었다. 후배 검사들이 수사를 엄정하게 하면서도 배려와 경청할 줄 아는 검사로 성장해줄 것을 주문했다.

-부산에서 네 차례나 근무했다.

▶사실 (중앙)공무원으로서 그렇게 자주 연고지에서 근무하는 경우는 드물다. 부산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군법무관, 평검사, (동부)지청장, 부산지검 검사장을 지냈다. 평검사 시절 ‘마약 없는 부산’ 캠페인 실무자였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자란 부산에 대해 각별한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고, 더 깊은 관계로 발전했다. 모교인 혜광고 선후배들과 지금도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나는 공직자인 아버지의 첫 부임지 진주에서 3녀 1남 중 둘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구미 선산, 어머니는 합천 출신이다. 초등학교 6학년 2학기 때 전근하는 아버지를 따라 부산으로 전학했다. 학생 수도 많고 활달하고 거친 친구들이 많았다. 내성적인 내가 외향적으로 바뀌었다. 고교 시절 선생님 몰래 술도 마시고 담배도 피웠다. 줄곧 1등을 도맡았다. 2학년부터 서울대 동문이 된 박상현, 박종철과 3인방이 됐다. 재수해 입학한 종철이가 사법고시 1차 합격하고 2차 시험 준비할 때 갑자기 숨졌다. 장례와 추모사업 등으로 정신 없이 보냈다. 정신 차리고 다시 1, 2차를 준비해 합격했다. 박종철 열사는 그렇게 혜광고와 함께 내 인생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를 추모하고 그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주는 데 앞장 서고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부산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부산에서 공직생활을 몇 차례 했다. 새삼 부산의 매력과 잠재력을 발견했다. 바다와 (낙동)강과 산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다. 천연의 아름다움을 가진 축복받은 땅이라고 생각한다. 기후적으로도 사계절이 분명하나 겨울에 춥지 않다. 살기 좋은 도시다. 부산의 발전도 이런 장점을 활용하고 산업화하면 좋을 것이다.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부산이 되고 부울경 메가시티의 중심이 될 것이다.


◇김기동 변호사는

▷1964년 경남 진주 출생 ▷학력 : 진주교대부속초 입학, 부산동신초·토성(경남)중·혜광고·서울대 법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법학과 수료, 런던대학방문연구자과정 수료 ▷경력 : 제31회 사법시험 합격, 제21기 사법연수원 수료, 육군법무관, 서울지검 남부지청검사, 대구지검 경주지청검사, 부산지검 검사, 법무부 인권과 검사, 서울지검 검사, 대구지검 부부장검사, 서울고검 검사, 대구지검 의성지청장, 서울중앙지검 부부장검사,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장·1부장 검사, 대검 연구관 겸 검찰기획단장, 수원지검성남지청 차장검사, 대구지검 제2차장검사,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원전비리수사단장, 의정부지검 고양지청장, 방위사업비리합동수사단장, 대전고검 차장검사, 대검 부패범죄특별수사단장, 사법연수원부원장, 부산지검 검사장 역임, 변호사 김기동 법률사무소(2019.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