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을 빛낸 출향인 <41> 김우상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미·중 패권전쟁 예언한 국제정치학자, 韓 동맹전략 제시도
김우상(64) 교수는 1988년 미국 로체스터대학에서 미·중 패권경쟁을 다룬 ‘동맹전이이론’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미시간대학 오르갠스키 교수가 1958년에 발표한 세력전이이론을 발전시킨 것이다. 당시만 해도 중국이 급부상해 미국과 패권경쟁을 할 것으로 예상한 이는 거의 없었다. 만 서른에 미국 텍사스 A&M 대학 교수로 임용됐다. 미국 대학생에게 미국의 국익에 맞게 한국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가르쳐야 하는 현실이 편치 않았다. 6년 만에 5 대 1의 경쟁을 뚫고 종신교수의 자리에 오른 이듬해 영구귀국했다.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거쳐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자리를 잡았다. 현실정치에서 외교정책 자문도 했다. 정치외교학에서 특히 게임이론을 공부했다. 최근 20여 년간 ‘신한국책략’ 시리즈를 집필하며 한국의 중추국가 역할론을 제시했다. 그의 저서 ‘신한국책략’과 ‘중견국책략’은 관련 분야 전문가의 필독서. ‘중견국책략’을 통해 미·중 패권 경쟁에서 어떻게 한국이 ‘스마트한’ 외교를 펼쳐나갈 수 있을지를 다뤘다. 북핵 위협에 대한 한국의 대비책과 한국의 동맹전략을 ‘신한국책략’에서 제시했다. 김 교수를 지난달 19일 연세대 연구실에서 만났다. 외교관다운 풍모의 그도 간간이 섞여 나오는 고향 말투는 감추지 못했다.
-국제정치학자로서 호주 대사,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을 지냈다.
▶연세대에서 동아시아 국제관계, 외교안보 세미나, 중견국 외교론 등 국제정치, 외교안보 분야를 가르치고 있다. 연구 분야로는 미·중 패권경쟁, 동맹 관계, 중견국 외교, 북한 핵문제 등이다. 이명박 정부 때 호주대사를 맡았다.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 직후 한국과 호주 정상은 ‘G20 정상회담’을 통해 세계경제위기 극복방안으로 금융구조개혁 등에 한 목소리를 냈다. 호주대사를 마치고 공공외교의 중심기관인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재임 기간 영국 대영박물관 한국실을 개설했다. 노무현 정부 때에는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자문에 참여했다. 노 전 대통령이 주장한 국내 지역균형 발전을 유엔 차원에서 전 세계 지역 균형발전을 주제로 하면 좋겠다는 것을 제안해 반영됐다.
-한·중·일 차세대 지도자 포럼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다.
▶2002년 한·중·일 정상회담에서 3국 5명씩 참여하는 ‘한·중·일 차세대 지도자 포럼’을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각국에서 정계, 재계, 학계, 언론계, 시민단체 대표가 1명씩 참여했다. 나는 학계 대표로 참가했다. 15인이 각각 한 나라에 5일 정도씩 머무르며 2주간 합숙했다. 일본의 총리에 도전했던 고노 타로 장관 같은 이도 그 인연으로 만났다. 2016년 마지막으로 열린 것으로 알고 있다. 지금은 한·일 관계가 역대 최악이고 한·중 관계도 뚜렷한 진전이 없다. 안타깝다.
-세력전이 이론으로 유명 학자가 됐다.
▶80년대 후반은 미국과 중국이 경쟁할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을 안 했던 무렵이다. 냉전 시대로 미국과 소련이 경쟁했다. 중국은 당시 개발도상국가에 불과했다. 미시간대학의 오르갠스키 교수가 1958년에 세력전이이론을 발표하면서, “앞으로 몇십 년 후에 미국에 도전해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나라는 중국이다”고 예측했다. 중국이 급성장해 미국의 패권에 도전한다는 이론이었다. 1980년대에 나는 그 이론을 가져다가 되살렸다. 미국 학계에서조차 나를 포함 4, 5명 정도에 불과한 소수의견이었다. 그런데 21세기 초 중국이 급부상하고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 몇 안 되는 학자의 세력전이이론 연구가 세계적으로 조명을 받게 되었고, 현재에도 가장 주목받는 국제정치이론이다. 나는 세력전이이론을 동맹전이이론으로 발전시켰다. 국제체제 내에서 중국과 같이 급성장하는 강대국이 상대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한 미국과 같은 패권국의 국력을 따라잡는 세력전이 시기에 양대 동맹세력 간 세력전이 전쟁 또는 패권쟁탈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이론이다. 국제정치학의 정설로 여겨져온 세력균형이론, 즉 양대 세력 간 국력이 비슷해질 경우 전쟁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이론과 정반대다.
– 미시간대 석좌교수 자리도 마다하고 조국으로 돌아왔다.
▶조교수에서 부교수로 승진하고 종신 교수직 확보를 위해 거의 6년간 연구에만 몰두했다. 프린스턴 대학 학술지, 예일대학 학술지, 미국 정치학계 학술지 등에 다수의 ‘세력전이이론’ 논문을 연속으로 발표했다. 스탠퍼드대학의 후버연구소 시절에 답을 찾지 못했던 ‘기대효용이론’도 ‘게임이론’으로 풀어 미국 국제정치학계 학술지에 게재했다. 1994년 6년 만에 부교수 승진과 함께 종신 교수직을 얻었다. 외교안보, 국방 문제를 강의했다. 문제는 미국적 시각에서 이들 문제를 강의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한미동맹’을 얘기해도 당연히 미국의 이익과 관점으로 다룬다. 열정적으로 강의하고 나면 힘이 빠졌다.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지?”라는 번민을 지울 수 없었다. 빨리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우리나라 젊은이에게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외교안보 전략을 가르쳐주고 꿈도 키워주고 싶었다. 1995년 종신교수직, 영주권, 집을 포기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중국·미국 간 패권경쟁이 치열하다.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을 추진하며 중국 중심의 새로운 경제, 안보 질서를 추구하고 있다. 남중국해 및 동중국해를 중국의 영해로 만들려고 한다. 신장 위구르족 인권유린, 홍콩의 독립과 자유를 무시하고 대만 독립까지 위협한다. 이 지역이 모두 중국 영토라고 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이에 대응해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인도, 호주 등과 4개국 안보대화체 쿼드를 만들었다. 쿼드는 나토처럼 군사동맹 형태로 바뀔 여지가 있다. 우리는 그렇게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미국과 중국이 군사적으로 대립하면 한반도는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 쿼드가 군사동맹화해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이 가속화되는 걸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쿼드에 가입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중추국 외교’를 강조한다.
▶우리 같은 나라는 강대국의 논리를 잘 파악해야 생존할 수 있다. 김영삼(YS) 김대중( DJ) 대통령에 비해 정치적 파워가 부족한 김종필(JP) 총리가 대등한 정치적 지위를 누릴 수 있었던 게 좋은 예다. JP가 중간에서 중추적인 동반자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4대 강국에 둘러싸여 있다. ‘중추국 외교’로 강대국과 동등한 지위를 누릴 수 있다.
-북한의 핵무기에 대한 우리의 대응전략도 이견이 크다.
▶북한이 어쩔 수 없이 비핵화를 추진하도록 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경제제재밖에 없다. 우리가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국민을 전쟁의 두려움에 빠트리는 일은 안 되기 때문이다. 북한이 핵무기나 미사일을 가지고 우리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하는 확실한 방법은 한미동맹을 강화해 전쟁억지력의 신뢰도를 더 높이는 것이다.
-고교 시절 ‘수학도사’라 불렸다.
▶부산 동대신동에서 태어나 서대신동에서 살았다. 7남매 중에 내가 여섯 번째이고, 셋째 아들이다. 중·고 시절 내내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고교 시절 걸어 다니는 수학 도사라는 별명도 얻었다. 대신중을 졸업하고 영도에 있는 부산남고에 입학했다. 매일 버스를 타고 태종대를 지나 바다를 보면서 등·하교했다. 넓은 태평양을 바라보며 원대한 꿈을 키웠던 고교 시절의 기억이 오래 남아 있다. 막내 동생, 큰 누나와 막내 누나 가족은 부산에 살고 있다.
-부울경이 메가시티로 글로벌 도약을 꿈꾸고 있다.
▶국제정치학자로 몇 년간 대사와 공공기관 이사장으로 일했다. 외도로 공직에 나선 것은 한반도, 아름다운 우리 강산을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인기 있는 휴양지, 국제회의 개최지, 관광지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의 관심사인 중추국 외교의 핵심 중 하나가 이와 관련이 깊다. 메가시티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난개발이 아닌 전략적 개발, 아름다운 개발을 추진해야 한다. 부울경의 멋과 전통을 그대로 살리면서 새로운 4차원의 도시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향후 5년이 아닌 2050년을 목표로 마스터 플랜을 준비해야 한다. 거주 주민의 이해관계 역시 우선 고려 대상이다. K-문화를 동경하는 세계인이 찾고, 와서 살 수 있는 그런 도시로 나아가면 좋겠다. K-문화에 빠진 세계인이 바라는 것이 무엇일까를 상상해봐야 한다. 2050년이 되었을 때 세계인이 오고 싶어 하고 살고 싶은 것이 있는 지역이 되어야 한다.
◇ 김우상 교수는
▷1958년 부산 출생 ▷학력 : 남성초, 대신중, 부산남고 졸업, 한국외대 독일어과 학사(정치외교학 부전공), 미국 시러큐스대 정치학 석사, 미국 로체스터대 정치학 박사 ▷경력 : 숙명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현), 한국국제교류재단 이사장, 주호주 대한민국 특명전권대사, 믹타(MIKTA) 5개국 국회의장회의 특별자문관, 호주 퀸즐랜드대 명예교수,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원장, 미국 텍사스 A&M대학 정치학과 교수, 미국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 연구원, 한국정치학회·한국국제정치학회 이사, 국방부 정책자문위원, 공군 정책자문위원, 한국해로연구회 집행위원장, 국가안전보장회의 정책전문위원, 대한민국 국회 입법지원위원 ▷저서 : ‘신한국책략 1~6권’, ‘중견국책략’ ▷논문 : ‘세력전이이론’, ‘동맹전이이론’ 관련 논문 프린스턴대(World Politics), 예일대(Journal of Conflict Resolution), 미국 학계(American Journal of Political Science) 등에 게재 ▷기타 : 2009년 ‘뛰어난 외교관’ 선정(오스트레일리언 파이낸셜 리뷰), 2002년 한·중·일 동북아 차세대 지도자 15인에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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