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을 빛낸 출향인 <45> 전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김도형 박사
中·日 역사왜곡 맞선 사학자 “문화의 힘 키워야 진정한 강국”
2002년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중국 역사라며 동북공정에 나섰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 정부는 2004년 고구려연구재단을 만들었다. 몇 년 후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까지 터지자 2006년 이 재단을 확대 개편했다. 중국과 일본의 역사 문제를 다루는 동북아역사재단이다.
역사학자 김도형(69) 박사의 전공은 한국 근대사다. 시기적으로는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전반까지다. 주제는 정치사상 분야로 우리나라가 중세사회를 근대사회로 개혁해 가던 시기다. 개혁을 이루지 못하고, 제국주의 아래에서 식민지로 전락했던 뼈아픈 기간이다. 김 박사는 동북아역사재단의 제5대 이사장으로 봉직했다. ‘고·중세사’ 중 중국과 일본의 역사, 독도 문제를 연구하는 것이 주요 임무다. 한·중·일 3국 간 ‘역사 분쟁을 넘어서 화해’의 길로 이끄는 것 또한 재단의 중요한 사업이다. 김용섭(1931~2020) 전 연세대 교수가 스승이다. 1960년대에 문화학술운동을 통해 식민주의 역사(관) 청산을 주도했다. 한국 농업사 연구의 권위자다. 해방 후 농업사 연구를 통해 식민사학의 정체성과 타율성을 일관되게 비판한 학자다. 주체적, 민족적 역사학의 틀을 세웠다. 주체적인 민족과 역사학을 바탕으로 민족문화를 현대 속에서 재창조하려고 애썼다. 김 전 이사장을 지난달 2일 오후 연세대 후문 쪽에 있는 그의 개인 연구실에서 만났다.
-한국 근대 정치사상사를 전공했다.
▶조선 후기와 개항 전 무렵이 배경이다. 국제관계사 속에서 우리 민족사를 어떻게 규정 지을 것이냐가 핵심이다. 제국주의 열강이 들어왔을 때 우리 민족이 어떻게 대처했느냐의 문제다. 1920년대 부르주아 민족운동과 사회주의 민족운동이 있었다. 새로운 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좌우 합작은 필연적이었다. 일본제국주의와 전쟁하며 모든 이념이 ‘민족정신’으로 수렴됐다. 대한민국의 법통이 임시정부에서 왔다. 건국 강령에는 사회주의적 요소가 많았다. 토지국유제가 대표적이다. 중요한 생산기관의 국유화도 있다. 새로운 국가 건설에 사회주의적 요소와 자본주의적 요소가 통합됐다. 미국과 러시아의 분할 통치에 이어 6·25남북상잔으로 이 모든 것이 허사가 됐다. 이로부터 상존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이념적 갈등과 차이를 어떻게 재통합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상대편을 인정하고 미래로 가야 한다. 이념이 다르지만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남남이든 남북이든 마찬가지다. 역사의 변화는 공존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한·중·일 역사 전쟁은 여전하다. 본질을 제대로 규명해야 해결책도 있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들어서 일본이 자신들의 역사를 보는 관점을 바꾸려 애쓰고 있다. 기존 역사관을 ‘자학사관’으로 규정, 아시아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전범국 역사를 위대한 것으로 오도하고 있다. ‘침략의 역사’로 기술해 자긍심을 저해한다며 우익 세력이 역사 책을 새로 썼다. 일본의 침략 전쟁을 미화하고 나선 것이다. 원폭 피해만 부각시켜 ‘평화기념관’을 만들기도 했다. 아시아 태평양 전쟁을 대동아공영권 건설을 위한 전쟁으로 정당화한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는 점점 우경화되고 있다. 중국도 그렇다. 덩샤오핑 이후 커진 경제력에 기대 ‘중화제국’의 영광을 되찾으려 하고 있다. 세계의 지도적 강국이 되겠다는 것이다. 다민족 통일국가인 중국은 현재 영토 내 민족이 이룬 역사는 다 중국 것이라고 한다. 동북 3성 만주 지역은 중국 땅이다. 고조선과 부여의 역사가 고스란히 중국 역사가 되고만 것이다.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 정권으로 탈바꿈했다. 학자들 사이에는 학자적 양심이라는 게 있다. 그나마 기댈 게 그것밖에 없다. 일본이든 중국이든 우리 입장에 맞지 않다고 지적은 할 수 있다. 그렇다고 강요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들은 그들의 논리가 있다. 자국(自國) 역사를 해석하는 것은 자신들의 몫이다. 단순히 나쁘다는 차원을 떠나 각국의 내재된 문제를 본질적으로 규명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가야 한다. 신뢰 회복과 관계 증진이 먼저다. 정부 간 차원보다 민간 차원의 문화와 학술 교류가 우선돼야 하는 까닭이다.
-대북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고 풀어야 할지 역사학자다운 답이 있을 법하다.
▶한편에서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을 하지 않고 언젠가는 없어져야 한다고 본다. 언젠가는 우리가 껴안고 가야 한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젊은이는 이대로 가만히 가자고도 한다. 북한은 위협의 존재로 있다. 핵무기도 그렇고, 그 위협을 약화시키는 쪽의 방향이 옳고 유일한 선택지이다. 우리는 근대 형태의 민족 국가를 완성하지 못하고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왔다. 그 과정에서 식민지가 됐다. 식민지를 넘어서면서 남북 분단이 됐다. 100년 혹은 200년 뒤에 우리 민족 사회 전체를 장기적 관점에서 볼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지금의 남북관계는 하나의 국가를 만들어가는 역사의 과정이다. 우리가 민족국가를 만들어 간다는 차원에서 언젠가는 합쳐져 역사의 발전 과정을 완결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통일은 어떤 형태로든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오랜 기간이 걸리더라도 어쨌든 하나의 형태로 가려면 지속적인 교류와 통일을 지향하는 의식을 공유하는 것은 필수 불가결하다. 지금은 비핵화에 걸려 모든 것이 블랙홀에 빠져버렸다. 우리가 떨어져 지낸 것은 70년이다. 5000년을 함께해 온 민족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자강(自强)밖에 없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균형자론’을 제기했다. 미국에 붙어서 우리의 안보를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다. 역사적으로는 어느 한 곳에 붙으면 꼭 다른 한쪽의 공격을 받았다. 명청 교체기에 명나라에 붙어 있다가 청에 망했다. 역사적인 비극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김구 선생의 ‘문화강국론’이 지금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물론 자강이 우선이다. 사회 전반이 강해져야 한다. 경제력만 뛰어나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강국의 핵심은 문화 강국이 되는 것이다. 군사력은 나라를 지킬 수 있을 만큼만 있으면 된다. 일부에서는 중립국가론을 제기한다. 19세기 말에도 우리나라를 중립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이 중립은 외부 열강들이 합의해줘야 한다. 19세기 말 20세기 초에 러일전쟁 직전 대한제국 정부에서 중립을 선언했다. 일본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강제 합병을 당했다.
-최근 신간 ‘국권과 문명’을 발간했다.
▶지난 2월 11일 지식산업사에서 ‘국권과 문명-근대 한국 계몽운동의 기로’를 출간했다. 대한제국 시기에 일어난 계몽운동의 시작, 전개와 1910년 한일합방의 변화 과정을 분석했다. 시대적 과제였던 국권 유지와 문명개화라는 점을 어떻게 달성할지를 두고 내부에 크게 두 갈래의 운동이 존재했다. 일제 강점 전후에 실력양성론 무장항쟁론 친일론으로 분화됐다. 이들 내용을 담았다. 그간 여러 권의 책을 출판했다. 수완이 좋거나 운이 좋은 극히 몇 퍼센트의 경우 외엔 전문서적은 돈이 안 된다. 많이 팔리지도 않는다. 각주가 충실하게 붙어야 하는 학술 책은 안 팔린다. 이번에도 500부 찍었다. 출판사도 현상 유지가 어렵다. 개인 연구실 내 8000여 권 역사전문서적이 가득하다. ‘역사도서관’을 만들어 이 책과 자료들이 제 자리를 찾아갈 수 있게 하면 좋겠다.
– 예향(藝鄕) 통영에서 나고 자랐다.
▶6남 1녀 가운데 넷째다. 경남중·고, 서울대를 다니느라 고향을 떠나 살았다. 그러나 부산과 서울에서 산 긴 타향살이 동안 한순간도 고향 바다를 잊은 적이 없다. 아버지(김용제·1922~1977)는 일제 강점기 통영수산중을 졸업한 통영 유지다. 1950년대 통영시의회 부의장, 충무시 의회 의장을 지냈다. 대한상의 부회장으로도 활동했다. 큰누나는 통영여중 졸업 후 부산여고에 진학했다. 아들 여섯 중 4명이 경남중에 합격했다. 그중 셋은 경남고를 졸업했다. 통영에 먼 친척이 많이 산다. 어머니(1926~2019)는 93세를 일기로 돌아가셨다.
– 부울경이 낙동강 문화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다.
▶낙동강은 부산 울산 경남의 젖줄이다. 문화적 공동체 의식의 발로다. 이것을 회복해야 한다. 하나의 생활 공동체로 바꾸어 갈 수 있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지역 공동체 의식이 강화될 때 부울경은 낙동강 문화공동체로 거듭날 것이다. 서로 이익이 될 수 있다는 공감대 형성이 필수다. 단순한 경제적, 물질적 발전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문화적 발전이다. 공동의 문화적 향유를 위한 가칭 낙동강문화재단 설립도 생각해볼 수 있다. 지역 단위의 박물관과 문화원도 통합적 운영으로 국립박물관을 능가할 수 있도록 지원하면 좋겠다.
◇ 김도형 전 이사장은
▷경남 통영 출생(1953) ▷학력 : 통영 충렬초·부산 경남중·경남고 졸업, 서울대 국사학과 졸업, 연세대 사학과 문학석사 및 문학박사 ▷경력 : 계명대 교수, 연세대 교수, 한일역사공동연구위원회 연구위원, 한국사연구회 회장, 국사교육발전위원회 위원, 한국사연구단체협의회 회장, 역사연구단체협의회 공동의장, 바른역사정립기획단 자문위원, 독립유공자 심의위원회 위원, 한국대학박물관협회 회장, 역사도시서울위원회 위원장,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저술 : ‘大韓帝國期의 政治思想硏究’(지식산업사, 1994) ‘근대 한국의 문명 전환과 개혁론-유교 비판과 변통’(지식산업사, 2014) ‘민족과 지역: 근대개혁기의 대구, 경북’(지식산업사, 2017) ‘민족문화와 대학 – 연희전문학교의 학풍과 학문’(혜안, 2018) ‘국권과 문명-근대 한국 계몽운동의 기로’(지식산업사,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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