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울경을 빛낸 출향인 <55>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
“詩는 인문학의 기초 … AI의 시대이기에 더욱 중요해”

 

정지용의 시를 통해서 정신과 언어 구사의 극점을 발견한 시인 유자효(75)는 미당 서정주의 시를 특히 좋아한다. “우리나라는 시의 나라”라는 그는 서 시인의 ‘동천’을 ‘우리 시가 가진 보물’로 손꼽으며 그를 “우주와 시간과 공간과 사랑을 보여 주는 대단한 분, 대단한 시를 남겨주신 분”이라며 극찬했다.

유자효 시인의 롤 모델은 구상이다. 본명이 구상준인 그는 평생 시인과 언론인의 길을 걸었다. 병환으로 작고할 때까지 신문에 칼럼을 썼다. 유 시인도 작가로 등단 후 방송사 기자가 되었다. 시조도 썼다. 해외 특파원으로 맹활약했다. 올해 제44대 한국시인협회장에 올랐다.

1982년 출간된 첫 시집 ‘성 수요일의 저녁’에 게재된 ‘가을의 노래’가 유 회장이 가장 사랑하는 시다. ‘떠날 줄 알게 하소서’라는 가곡의 제목으로 더 유명하다. 박경규 작곡가를 통해 노래로 거듭났다. ‘잃을 줄 알게 하소서/가짐보다도/더 소중한 것이/잃음인 것을,/이 가을/뚝뚝 지는/낙과의 지혜로/은혜로이 베푸소서//떠날 줄 알게 하소서/머무름 보다/더 빛나는 것이/떠남인 것을,/이 저문 들녘/철새들이 남겨 둔/보금자리가/약속의 훈장이/되게 하소서(전문)’이다. 인도에서는 영어로도 번역·소개됐다.

그의 시는 이처럼 일관되게 쉽고 단순하며 간결하다. 어려운 단어 없이 대중이 읽고 이해할 수 있다. 일상에서 삶의 진리를 궁구(窮究)한다. 유 시인은 1968년 신아일보에 시로 등단했다. 불교 신자인 그는 불교신문 신춘문예에도 시조를 출품해 당선됐다. 지난달 간행된 그의 시집 ‘포옹’은 그의 시 인생이 추구하는 바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시는 말의 절/절은 말의 시//시 한 편 쓰는 것이 절 한 채 짓는 것보다 낫다//스님은 떠나 말 없고/남아 있는/절과 시(‘만해마을’)’. 불자로서 그가 시를 쓰는 자세다. 같은 시집의 시 ‘은총’과 ‘청년 김대건’에서는 예수님과 천주님을 노래한다.

마흔여섯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마음도 그의 시 곳곳에 스며 있다. 코로나로 길거리에 나앉고 죽어가는, 가난하고 늙어 병약한 자들의 아픔을 절규하기도 한다.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그의 집무실에서 일흔 중반의 나이에도 치열한 언어의 조탁(彫琢)을 멈추지 않고 사는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을 만났다.

-시인의 역할이 더욱더 커지고 있는 시대다.

▶시인은 예언자라는 말이 있다. 탁월한 시인은 영감으로 시를 쓴다. 미래에 대한 예지력이 있다. 우리 시대가 바르고 미래지향적인 길로 가기 위해서는 시인의 역할이 크다. 시가 예술의 근간이고 정신력의 바탕이다. 인문학의 가장 기초가 시다. 인공지능(AI) 시대가 점차 진화될수록 인문학은 더 중요해질 것이다. 인간 정신의 탐구가 더욱 절실한 시대다. 시인이 목숨을 걸고 시를 써야 하는, 시가 중요해지는 시대다.

-한국시인협회 회장의 자리에 올랐다. 회장 선출 방식이 매우 독특하다.

▶그렇다. 한국시인협회장은 역대 회장이 모여서 만장일치로 추대한다. 초대 회장은 유치환 시인이다. 3대까지 연임했다. 조지훈(4, 5대) 박목월(10~18대) 조병화(23대) 김남조(24대) 김춘수(25대) 김광림(28대) 신달자(38대) 나태주(43대) 회장의 뒤를 내가 잇게 됐다. 1957년 창립한 현존 문학 단체 중 가장 오래된 조직이다. 장르 단위 문인협회로는 최초다. 신임 회장으로서 회원들의 작품 발표 기회를 대폭 늘리고 ‘한국시인 TV’를 유튜브로 개국했다. 해외 시단과 교류도 꿈꾸고 있다. 불어권 시인 협회와의 교류가 첫 사업이 될 예정이다.

-언론인의 삶을 떠나서 전업 작가가 됐다.

▶나에게 기자로서의 삶과 시인으로서의 삶은 하나다. 같은 하나의 길이다. 시인으로서 시를 쓰기 위해 사물을 자세히 관찰하고 좋은 표현을 찾는 것은 사건을 면밀히 살펴 객관적인 기사를 쓰기 위한 노력과 상통한다. 방송 기자는 많은 내용을 최종적으로 리포트 1분 30초로 압축해야 한다. 시도 결국은 압축해 에센스를 쓰는 것이다. 방송 기사를 쓰는 것과 문인으로서 글을 쓰는 것이 다르지 않다. 내면에서는 늘 하나였다. 이를 나이가 든 뒤 깨달았다. 기자 시절 기사를 잘 쓴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이전에 시를 쓰는 훈련을 통해 얻은 것이었다. ‘시인 같은 기자, 기자 같은 시인’ 혹은 ‘데스크 볼 것 없는 기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부산중학교 시절 교내 백일장에서 장원이 됐다. 고1 때 진해 ‘군항제’에서 고등부 장원을 했다. 같은 해 5월 ‘마산문화제’ 백일장 역시 마찬가지 성적을 거뒀다. ‘학원’이라는 잡지에 시와 산문을 기고하기도 했다. 으쓱대고 글 쓰고 백일장 다니느라 대학 입시 준비는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대학생 시절인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입선했다. 동시에 불교신문 시조 부문에 당선됐다. 문인으로서 활동은 1968년에 시작된 셈이다. 기자로서는 1974년 KBS 2기 기자로 시작했다. 60대에 접어들어 SBS 이사직에서 물러나 전업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 간행된 두 권의 시집 ‘신라행’(2021)과 ‘포옹’(2022)은 유 시인의 작품 세계를 잘 보여준다.

▶시집마다 주제가 있다. 신라행은 1500년 전 신라 사람이 어떻게 통일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질문에서 출발했다. 당시 신라인의 높은 정신 수준, 예술적인 경지는 미륵보살반가사유상에서 발견할 수 있다. 석굴암 대불에 표현된 세계 역시 신라인의 정신적 깊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당시의 서라벌이 실크로드의 출발지였다. 신라 통일의 원동력은 결국 높은 정신세계에서 비롯된 것이다. 문화와 예술, 정신의 높은 수준과 세계가 있었다. 이 시대 우리에게도 이런 신라 정신이 필요하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자꾸 멀어지는 코로나 3년의 기간이 마음의 포옹이 필요한 시대라는 생각으로 시집을 냈다. 수십 수백 수천 마리 펭귄이 남극의 혹한을 이긴 힘이 포옹에 있다. 정신적인 끌어안음, 포옹이 우리가 모두 살 수 있는 길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한국 기자 최초로 동유럽 공산권 취재에 성공했다. 레흐 바웬사 인터뷰는 서울발 특종이었다.

▶동유럽이 무너지기 직전 취재한 한국 최초의 기자가 됐다. KBS 기자(유럽 총국장 서리)로 한국을 대표해 헝가리 유고슬라비아연방 동독 폴란드 불가리아를 취재했다. 가장 먼저 비자를 발급해 준 곳은 헝가리였다. 1988년 초 폴란드를 처음 방문했다. 폴란드 아우슈비츠도 둘러보았다. 가택연금 상태인 레흐 바웬사가 다니는 그다니스크 성당에 잠입해 예배에 참석한 그를 취재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 기자로서 첫 인터뷰였다. “노동자 혹은 노동조합이 어떤 경우에도 삶의 터전인 직장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그의 강력한 메시지는 지금까지 잊히지 않는다. AFP 서울발로 전 세계에 타전했다.

-대학 시절 가정적 시련을 이기고 방송 기자로 격변의 현대사 현장을 지켰다.

▶대학 시절 ‘창작시대’의 회원이었다. 박호영(평론가) 이문열(소설) 김재홍 전영태 등이 함께 활동했다. 시에는 김철교 김진경 윤재철이 있었다. 대학 4학년 때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어머니마저 갑작스럽게 돌아가셨다. 졸지에 가장이 됐다. 학업을 중단하기로 마음먹었다. 동아일보 부산지사 기자에 응모해 합격했다. 서울 짐을 정리하려 상경했다가 부산고 동기인 윤상운 시인에 붙들렸다. “반년이면 졸업이다. 그러지 마라. 학교로 돌아와라.” 그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4학년 2학기를 마칠 무렵 KBS 견습기자가 됐다. 월남 패망, 10·26사태, 부마항쟁, 12·12, 5·18 등 엄청난 격동기였다. 30대를 주로 정치 현장에서 취재에 전념했다. 현대사의 현장에 있었다.

-한국시인협회 회원 100여 명을 이끌고 11월 고향 부산 방문행사를 연다.

▶부산 없이는 대한민국이 없다고 어느 글에 쓴 적이 있다. 넉넉한 품을 가진 고장이 내 고향이라는 것이 나이가 들수록 자랑스럽다. 부산 이상개 시인이 창설 멤버로 울산 조남훈, 마산 오하룡 등 부울경 출신 시인이 주축이 된 ’잉여촌‘이라는 동인이 있다. 동인회 결성은 1960년대, 나는 1970년대에 가입했다. 한국시인협회 회원 100여 명이 오는 11월 24, 25일 부산에서 ‘시 교육’을 주제로 강연도 하고 학생들의 창작 시 발표도 할 계획이다. 부산 엑스포를 도울 계기도 마련하려고 한다. 김민부 김종철 두 작고 시인 시비도 참배할 것이다. 고향 부산에 자그마한 기여라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유자효 회장은

▷1947년 부산 출생 ▷학력 : 동광초, 부산중, 부산고, 서울대 사대 불어과 졸업 ▷경력 : KBS 기자, 유럽총국장 겸 파리특파원, SBS 정치부장, 해설위원, 보도제작국장, 라디오본부장, 기획실장, 논설위원실장, SBS 이사, 한국방송기자클럽회장, 제3대 지용회장 취임, 제4대 구상선생기념사업회장, 한국시인협회장 ▷작품 활동 : 신아일보 신춘문예 시 ‘소묘 3제’ 입선, 대한불교신문 현상모집 시조 ‘산사’ 당선. ‘성 수요일의 저녁’ ‘짧은 사랑’ ‘떠남’ ‘라라의 투쟁’ ‘지금은 슬퍼할 때’ ‘세상의 다른 이름’ ‘다시 볼 수 없어 더욱 그립다’ ‘금지된 장난’ ‘아쉬움에 대하여’ ‘성자가 된 개’ ‘여행의 끝’ ‘전철을 타고 히말라야를 넘다’ ‘나는 희망을 보았다’ ‘주머니 속의 여자’ ‘사랑하는 아들아’ ‘성스러운 뼈’ ‘아직’ ‘스마트 아기’ ‘꼭’ ‘황금시대’ ‘세한도’ ‘신라행’ ‘포옹’ ▷수상 : 편운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유심작품상, 한국문학상, 불교언론인상, 현대불교문학상, 시와시학상 본상, 공초문학상, 만해대상 문예 부문 공동수상